1999년 11월 쿠바를 탈출하려는 어머니의 손에 끌려 탔던 보트가 뒤집혔으나 혼자 극적으로 구조된 당시 여섯 살배기 소년 엘리안 곤잘레스의 천진한 얼굴은 사람들에게 친숙하다. 미국 땅에 옮겨진 엘리안의 거처를 둘러싸고 한동안 전국이 시끌벅적했고 미국-쿠바 양국간 갈등이 극에 달했었다. 미국에 있는 엘리안의 친척들은 "독재정권인 쿠바로 보내지면 엘리안이 불행해진다"며 미국 정부가 망명 처리해 줄 것을 촉구했고 쿠바에 사는 엘리안의 아버지는 "엘리안은 납치됐다"며 조속한 송환을 요구했었다.
’인권’과 ‘친권’을 놓고 오랜 줄다리기 끝에 연방이민국은 엘리안 아버지의 친권을 인정해 2000년 여름 엘리안을 쿠바로 돌려보냈다. 아버지 곁으로 간 엘리안이 아버지와 공놀이하며 뛰어 노는 모습에선 분명 행복감이 넘쳐흘렀다. 가족이 헤어져 살아야만 한다면 가슴아픈 일이니 말이다.
이산가족은 불가항력의 천재지변에 의해 생기기도 하고 전쟁 등 인위적인 사건으로 발생하기도 한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을 떠나게 된 실향민도 이산의 쓰라림을 잘 안다. 모진 박해를 피하기 위해 조국을 등진 망명자도 예외일 수 없다. ‘노예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는 흑인들을 ‘사냥’해 이산가족을 만든 것은 헤일리의 명작 ‘뿌리’를 통해 잘 알려져 있다.
이산가족의 설움에 한국인만큼 절절이 사무쳐 있는 민족도 드물다. 일제치하에서 조국을 떠나 중국과 구 소련으로 떠났다가 귀환을 못한 사람들, 광복 후 휴전선이 설치되면서 가족과 재회를 못하고 있는 사람들, 한국전 중 자유를 찾아 월남한 사람들, 강제 납북된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래저래 이산가족은 남북한에 1,000만명, 중국에 200만명, 러시아에 40만명 정도가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 북경 주재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해 망명을 요구한 탈북자 25명이 필리핀을 경유해 18일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는 데 성공했다. 목숨 건 탈주를 시도한 이들이 자유를 찾은 것은 박수를 보낼 일이다. 특히 16세 고아소녀의 경우는 진한 감동을 준다. 북한에 가족이 없으니 이제 자유를 만끽할 일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 모두들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사람들이 더러 있기 때문이다. 열 살짜리 딸을 데리고 인천공항에 내린 한 40대 부부는 "12세 17세 먹은 오누이를 두고 왔다. 보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 통일돼야 볼 수 있지 않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오죽했으면 오누이를 두고 탈북을 결행했을까 하는 대목에선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산의 쓰라림을 안고 살아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들은 갈망하던 바를 이루었다. 헌데 졸지에 부모를 잃고 ‘동토’에 덩그러니 남겨진 오누이의 심정은 어떠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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