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사춘기에 접어드니 눈에 띄게 성적이 떨어지며 놀 궁리만 한다. 자동차 운전면허도 친구들 중에서 제일 먼저 딸 생각을 갖고 있으니 불안스럽기 짝이 없다.
사춘기를 맞은 아들을 보면 자연히 나의 쓰라린 사춘기 시절이 떠올라 더욱 더 불안스럽다.
나의 사춘기 시절은 통나무가 비탈길을 와장창 와장창 막 굴러가듯 상처투성이였다. 그리고 마치 숲 속에 버려진 토끼처럼 호기심이 많아 이리저리 뛰어 다니다가 그만 사춘기의 덫에 걸려 10년 동안 사춘기의 터널에 갇혀 있었다.
아들이 어렸을 적엔 허리를 밧줄로 묶은 것처럼 그림자 같이 따라다녀 귀찮을 정도였는데 사춘기에 접어드니 어디를 가든 따라 나서지를 않아 내심 섭섭했다. 뿐만 아니라 사사건건 내게 맞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곤 했다.
이렇게까지 아들에게 밀릴 수 없다 싶어 아들의 고집을 꺾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아들에게 밀리면 밀릴수록, 아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하면 할수록 아들의 미래가 불안스럽기 때문에 똑바로 잡아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선 온갖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애물인 컴퓨터를 차단해야겠다 싶었다.
오늘도 역시 아들이 컴퓨터 앞에만 붙어있기에 그만하고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는데도 꿈쩍도 않고 맞선다. 그래서 "내가 이 집안의 가장이다. 내 말을 듣지 않으려거든 나가되 멀리는 가지말고 문밖에 있으라" 했다.
그때가 밤 9시께였다. 돈도 옷도 챙기지 못하게 하고 그냥 내의 차림으로 밖으로 내몰았다. 그래야 멀리 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아들은 밖이 추우니까 한참을 뛰어다니더니 한 시간 후에 사과를 해서 집에 들여보냈다.
내 생애 최고로 불안한 시간이었으며 가장 어려운 싸움이었다. 너무 심하게 하면 가출할지도 모르고 상처도 받겠으며 그렇다고 너무 느슨하게 하면 아이가 이상하게 될 터이므로 자나깨나 불안스러웠다.
하여튼 큰 곤욕을 치르고 나서 컴퓨터 성능이 느린 것으로 바꾸는데 성공했고 집안의 기강을 바로 잡았다. 아들은 오히려 부모를 존경하는 눈치였다. 지금은 숙제할 때만 컴퓨터에 앉는다.
내가 10년 동안 사춘기 터널에 갇혀 나오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아버지는 부재했고 어머니는 허약해 제때 내게 도움을 주지 못한 때문임을 수십년이 지나서야 알았다. 부모는 거목 역할을 하여 어린 나무를 그늘지게 해줘야 한다. 아이가 시험에 떨어졌거나 성적이 나빠도 슬프게 울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맛있는 것 사주면서 격려해야겠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부모의 불안과는 하등 상관없이 자녀들은 부모의 키를 훨씬 넘어 사회를 향하여 뻗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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