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작가 귄터 그라스가 불과 216페이지 소설로 밀리언셀러를 만들었다.
더욱이 이 신작은 반세기나 역사의 책갈피 속에 묻혔던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이 겪은 비극과 상실을 강렬하게 조명, 이목을 끌고 있다.
20세기 독일 역사에 대한 대부분의 탐구처럼 ‘임 크렙스강’(게걸음)도 문학적인 이벤트라기보다는 정치적인 변천이다.
하지만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그라스의 이 신간소설은 히틀러가 미증유의 전쟁을 일으켰다는 죄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그동안 숨겨왔던 독일인 자신들의 고통과 희생을 이제는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부추기고 있다.
발간 첫 4주 동안 무려 30여만권이 팔려나간 이 소설은 1945년 1월 침몰된 나치 유람선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비극적 운명을 담고 있다.
이 배에는 전쟁 초기 독일군의 소련 침공에 대한 보복으로 붉은 군대가 동부전선에서 강간과 살인을 자행하자 이를 피해 도망가던 독일인 1만여명이 타고 있었는데 대부분은 여자와 어린이였다.
하지만 소련은 나치 신병들과 부상병들도 승선하고 있다는 이유로 이 배를 군사 목표물로 규정, 잠수함 어뢰공격으로 침몰시켰다. 승객 1만여명 가운데 거의 9,000명이 얼음처럼 차가운 발틱해에서 숨졌다. 절반은 어린이였다.
이 배의 정확한 승객 명단은 없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소련군을 피하기 위해 아비규환 속에 승선을 했기 때문이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마지막 항해는 인류 최악의 해양 재난으로 기록됐다. 처녀항해 도중 대서양에서 빙산과 충돌, 침몰한 전설적인 호화 여객선 타이태닉호의 사망자보다 무려 여섯 배나 많은 숫자다.
하지만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독일 피난민들을 싣고 가다가 침몰돼 수많은 인명이 손실된 첫 번째 피난선도 마지막 피난선도 아니다. 무수한 피난선들이 격침됐다.
동유럽에 살고 있던 1,500만명의 독일인들은 대전 말기 수개월 동안의 피난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자를 냈다. 소련군의 진격을 피해 서쪽으로 쫓겨가면서 250여만명의 독일인들이 추위와 굶주림, 부상으로 목숨을 잃었다.
제3제국이 패망한 1945년 5월부터 연합군의 전후 복구작업이 개시되기까지의 수개월 동안 살아남은 피난민들은 집도 없이 기름종이를 덮고 잠을 잤다. 나무뿌리를 캐먹거나 비둘기와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연명했다.
1950년대 만들어진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에 관한 영화 한편과 별로 일반의 주목을 받지 못한 생존자들의 수기 몇 편을 제외하고 전쟁 당시 수백만 독일인들이 감수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과 희생은 이번 출간된 그라스의 소설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본격적으로 거론되지 않았었다.
"지금까지 사회는 이 문제를 대면할 준비가 돼있지 않았었다. 독일인을 피해자로 묘사하는 것은 보복주의 출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항상 금기시 됐었다. 하지만 이제 이 이슈에 대한 공개적인 토론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떠올랐다"
피난민 생존자를 대변하는 로비단체 엑사일스의 에리카 스타인바흐 회장은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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