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의 투철한 시민정신을 말하면서 예로 드는 것은 철저한 신고정신이다.
길거리에 주차된 모르는 사람의 차를 누가 접촉사고를 내고 도망쳐도 목격자는 그 차의 번호를 적어두었다가 경찰에 신고한다.
경찰이 증인으로 나오라고 하고 필요하면 증언을 해야하는 등 상당히 귀찮은(?) 일이 일어날 수 있을텐데도 미국인들은 이웃의 일을 수수방관하지 않는다.
대로에서 깡패에게 맞아 숨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한국의 실정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처럼 신고정신이 투철한 미국인들이 그동안 일부러 눈을 감고 살아온 것이 불법체류자 문제였다.
공사장이나 농장, 산업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중에 수백만명의 불법체류자가 있어도 특별히 이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이민국(INS)에 신고하는 일은 드물었다.
경찰과 이민국의 업무분담도 철저해, 경찰은 피의자가 불법체류자라는 것을 알아도 이민국에 연락하지 않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미국인의 불법체류자에 대한 정책이 변하고 있다.
조셉 그린 INS 부국장은 지난 21일 연방하원 이민소위원회에 출석, 보고를 통해 앞으로 불법체류자 단속을 공항을 비롯 방위산업, 하이텍, 교통, 사회기간시설 등 국가안보와 연결된 전 정부기관과 민간업종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INS는 또한 이민국의 단속활동을 미국내 불법체류자와 범죄자 추방, 불법체류자를 고용하는 업주 에 대한 처벌강화에 주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민국의 이같은 강경책은 당장 실시돼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을 비롯한 미국내 20개 주요 국제공항에 근무하고 있는 근로자에 대한 대대적인 신원조회를 통해 불법체류자를 비롯 위조된 영주권과 소셜 시큐리티 카드 등 허위서류를 제출한 직원 100여명이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말이 ‘불법’이지 불법체류자를 일반 범죄자와 같이 취급하는 것은 그동안 미국정부의 이민정책에 비추어볼 때 분풀이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캘리포니아주의 거대한 농장지대를 비롯한 저임금 산업에서 일하는 불법체류자들을 용인또는 방조해왔다.
미국의 경제학계에는 ‘이민경제학’이라는 것이 따로 세분돼 있어, 불법체류자를 포함한 저임금 이민자들이 미국경제에 기여하는 경제적 효과를 분석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이민자 권익옹호단체에서는 ‘불법’(illegal)이라는 말 대신에 ‘서류미비(un-documented) 체류자’라는 말을 쓰고 있다.
"현재는 서류가 미비해 영주권을 얻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갖추어 합법적인 체류신분을 얻을 사람들"이라는 것이 옹호단체의 ‘서류미비 체류자’들에 대한 시각이다.
미국이 9·11 테러사태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불법체류자들이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보는 것은 억지이다.
테러리스트들도 합법적인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를 갖고 미국에 입국해 일을 저질렀을 뿐이다.
로마의 귀족들이 노예들의 노동을 통해 호화스러운 생활을 즐겼듯이, 미국인들은 그동안 불법체류자들의 약점을 이용해 저임금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을 부려왔던 것은 아닐까?
전쟁의 분풀이로 수백만명의 불법체류자들을 범죄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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