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부부싸움의 원인 중 가장 흔한 것이 치약 때문이란다. 끝부분부터 가지런히 짜지 않고 중간부분을 아무렇게나 누른 자욱 때문이라는데 부부 중 하나가 꼭 그렇단다. 치약을 쓰고 나서 뚜껑을 닫았는지 방치했는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라나 - 그만큼 하잘 것 없는 말씨름이 싸움으로 발전한다는 해학적 주장 쯤으로 일소에 부치기에는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 같다.
치약 뿐이 아니다. 몇곱절 몇십 곱절 비싼 유화물감 튜브를 사용할 때도 그렇다. 그리 급하게 덜렁거릴 이유가 없는데도 작업이 끝나면 모두가 제각각이다. 누른 부위가 다르고 제 뚜껑 찾아 닫기가 어렵다. 물감이 모자랄 땐 찌그러진 튜브를 뒷면부터 칼국수 밀듯 붓대로 밀어 쓰기도 하고 아예 튜브의 배를 갈라 설거지 하듯 훑어 쓰기도 하는데 치약 쓰기를 물감 쓰기처럼 했다면 아내에게 칭찬 꽤나 듣지 않았을까. 칭찬 뿐일까, 아예 가풍까지도 굳건히 지켰을지도 모르지 않는가.
몽당 붓 늘려 쓰기는 또 얼마나 알뜰한가. 붓과 붓대를 연결시키는 철판에 촛불을 적당히 가열하고 난 후 두꺼운 타월로 덮어 씌우고 붓털을 한꺼번에 잡아 당기면 0.5mm는 끌려 나오는데 그 길이면 몇 폭의 작품을 제작하고도 남는다.
도대체 그림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시가 산문의 생략이라면 춤은 언어의 생략쯤일 것이고 소설은 인생의 간추림일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은 마음의 간추림 즉, 더 이상 버릴 수 없는 마지막 남은 것일 터인데 막상 그림을 그릴 땐 그렇게 정서적이지 못하다. 툭툭 튀어나오고 불거져 나오는 감정들이 튜브의 뒷부분부터 차근차근 짜 내려가는 정서를 허용하지 않는단 말이다.
하얀 캔버스 앞에 섰을 때부터 은근하게 밑부터 끌어오르는 어떤 열기가 칠하고 깎아대고 문지르고 흣뿌리게 한다. 분명한 마음의 생각, 경험의 생략일진대 물감의 두께, 붓의 속도, 색의 섞임이 그 생략을 확인시킨다.
그렇다고 우연이라는 말이 아니다. 진솔한 마음이 그대로 표현되는 그런 것 말이다. 또 있다. 새로운 것을 찾겠다는 욕심,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에의 도전이 튜브의 앞 뒤를 분간 못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 막연한 열기를 제어할 방법은 없는가? 그리고 꼭 제어하여야만 할 것인가?
어쨌든 내일 아침부터는 치약의 튜브만이라도 뒤에서부터 차근차근 짜는 연습을 시작하여야 겠다. 음악의 악보처럼 부드럽게, 그리고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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