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다시피 변함 없는 우정은 존재 불가능이고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위의 문장을 적는 것조차 배반 스러우며 실망감을 엿보이게 만든다. 그 이유란 옛 친구는 언제 보아도 옛 그대로 다정하다고 믿고 싶은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때의 나에 대한 그리움으로 덧씌운 채로 친구를 볼뿐이지 나나 친구나 옛 그대로이지는 않다.
앞으로만 가는 세월에 도대체 무엇으로 그 옛날의 손잡고 함께 걸어가던 혹은 함께 몰래 극장구경 가던 기억의 가슴 설레임으로 잠시나마 돌아가 볼 수가 있단 말인가. 옛 친구는 그래서 좋은 것일 게다. 더러는 잘 살게 되고 권력가의 부인이 되어 의식적인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아한 미소를 띄는 것을 보게도 되고, 더러는 그동안의 삶으로 진짜 멋있어져 질투심 마저 일으키기도 하나, 그 친구와 나만이 기억하는 이야기를 되새기는 순간에는 그냥 그대로 그 때로 돌아가 버려 눈물이 번지도록 함께 웃어댈 수 있는 게 바로 옛 친구만이 내게 줄 수 있는 선물이다.
얼마 전 옛 독일 여자친구가 놀러와 4주를 함께 지내고 돌아갔다. 영어를 전혀 못하는 독일 여자친구였다고 말하면 누구든 날더러 그렇게 독일어를 잘 하냐고 묻기부터 하지만, 우정에는 언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마음만 통한다면 그냥 쉬운 의사 소통만 가능한 채로 얼마든지 부부생활이나 우정이 가능하다고 여긴다.
이것은 나의 독일어 실력에 대한 변명만이 아니라, 실제로 함께 웃고 슬퍼하고 기뻐하거나 마음이 합해지는 데는 말이 그다지 필요 없는 수가 흔하기 때문이다. 또는 서로가 시시콜콜히 너무 잘 알아서 오히려 화를 미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으므로.
우리는 서로가 젊은 엄마였고 아내였을 때의 친구였기에 육십이 내일 모레인 채로 다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30년 전으로 금방 돌아가서 서로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음악을 먹으며 함께 아는 이들에 대한 그동안의 이야길 나누었다. 장래촉망의 미남이었던 W교수는 부인 베르타와 이혼하고 젊은 여자와 재혼하여 새로 세 자녀를 두었고, 벤츠회사 중역인 I는 아래위층으로 나뉘어 별거하는 지가 십 수년 째이고, 유방암의 부인과 사별한 그녀의 사촌은 재혼하여 쉰이 다 된 나이에 아들을 낳았고, 등등 그야말로 사람 사는 게 다 마찬가지라는 결론에 맞장구를 치면서 다음 번에 다시 만나면 누구는 어디가 아프고 누구는 죽었고를 이야기 할 것이라며 씁쓸해 했다.
옛친구- 그동안의 세월에 어딘지 모르게 강해진 삶의 태도는 싫은 건 싫다고 타인에게 뚜렷이 말하기에서 옛친구는 제외된다. 그러길래 친구가 떠나간 자리는 언제든 비워져 있게 마련이다. 결국 사랑처럼 우정 또한 일방적이게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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