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박사는 1904년(30세) 도미하여 일본의 한국 침략을 경고하였으며, 지금도 우리 2세들의 선망의 대상인 아이비리그 대학인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은 국제 감각에 밝은 수재이며 정치가인 이승만 박사의 후광을 업고 권력을 유지하려던 자유당원과 당시의 관료들이 제4대 정부통령 선거(1960년 3월 15일)에 전무후무한 부정을 저질렀고 부정선거 규탄 시위가 격화되었고, 이 박사는 하야의 슬픔을 맞았다.
반대파에 의하여 독재의 비난도 있었으나, 식민통치에 시달리던 대한민국에 민주공화제의 건국을 이룬 그분이 학생시위의 원인을 보고 받고 "통탄할 노릇"이라고 심기가 격하였으며 "부정을 보고 궐기한 학생들에게서 이 나라의 광명이 보이며, 부정을 보고도 잠잠한 민중이 있다면 그 민족은 죽은 민족이다"하셨을 뿐만 아니라 "국민이 원한다면 하야해야지"했다.
우리가 모를 때 나라를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였고, 민주주의를 모르는 우리에게 자유 민주주의를 가르쳤고 6.25남침 때는 능숙한 외교 능력으로 유엔군 참전 조치에 성공하여 김일성의 야욕을 물리치고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도 국익에 합당치 않을 때는 상대하지 않은 정치인. 6.25 때 이 박사와 같은 분이 계시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북한처럼 남북 모두가 기아에 허덕이고 인권은 박탈당한 세계의 골칫거리였으리라. 그분의 몇 년의 실정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그분의 명예를 회복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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