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면서 배우면서
▶ 이사벨라 리/샌프란시스코
요즈음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다. 집에는 하다 못해 아이들이 대학교를 다니면서 이사할 때마다 가져다 둔 상자도 여러 개나 쌓여 있다. 이 물건들은 한군데 모아 창고를 빌리기로 하였다.
나는 책을 엄청나게 좋아한다. 여지껏 이사할 때마다 책은 물론 오래된 잡지책까지 싸 가지고 다녔다. 그냥 책이 좋은 것이다. 읽다보면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책도 있고 또 한층 부픈 마음으로 읽었지만 별로 라고 생각 했던 책도 나에게는 다 귀했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작가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지를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이번엔 책을 정리했다. 잡지책도 정리했다. 읽고는 별로 라고 생각되었던 책들을 정리하면서 어디서 이런 용기가 나왔을까 내 자신이 오히려 크게 놀란다. 내가 가까이 하고 한 공간에서 숨을 같이 쉬어 줄만한 책들만 골랐다.
동생도 그렇고 언니도 그랬다. 와서 도와 주겠다고 말이다. 손목이 약하신 어머니도 그러셨다. 도와 주겠다고 말이다. 그러나 혼자서 조용히 인생의 반 길목에 서서 심각하게 내 인생을 재정리하고 싶었다.
기억한다. 어머니와 남동생 식구가 지금 사시고 계신 알마덴 벨리로 이사를 할 때 말이다. 아버지께서는 옛날 물건을 하나도 버리실 줄을 모르셨다. 어머니가 버린다고 밖에 내 놓으시면 어느 새 이미 집안으로 아버지께서 들고 들어오셨다는 것을 말이다. 주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옛날 물건들을 버리지 못 한다. 스치고 간 물건들이 우리의 인생 한 부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리를 하니 아이들이 어렸을 때의 사진들이 이 서랍 저 서랍에서 많이 나왔다. 이제 커진 아이들을 떠올리며 세월이 참으로 많이 지나갔다는 생각이었다.
손톱깎이가 일곱 개나 나왔다. 돌아서면 안보이고 안보이면 또 사고 했더니. 동그란 플라스틱통 한군데에 손톱깎이만 쌓아 놓고는 한참이나 웃었다.
동전은 또 얼마나 나왔는지. 커다란 김치유리병에 온갖 동전들을 쏟아 부어두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때 가족들이 모여 동전별로로 구분하여 종이동전말이로 둘둘 말아볼 것이다. 과연 한 집에서 이사를 하면서 주울 수 있는 금액은 얼마나 될 것인가 궁금 하다.
산뜻하게 살고 싶어 이사를 단행하였다. 3톤이나 되는 쓰레기 컨테이너를 일주일간 렌트하여 그 양을 다 채웠으니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내다 버렸단 말인가. 때로는 정리하여 버 릴 것을 버리는 순간이 신성하기조차 했다.
아침에 일어나니 왼쪽 목이 따끔거린다. 약간의 몸살기운이 있는 것 같다. 하긴 그 엄청난 량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나니 긴장이 풀린 것 같다.
이사를 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새롭다. 다시 시작하는 인생인 것 같은 기분이다. 새로운 집에서 착실하게 살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 여간 흐뭇한 것이 아니다. 이번 이사준비가 나의 삶을 재정리하는 기회라면 이번 이사는 나의 귀한 새 출발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