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4차 이산가족 상봉 장면을 보면서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한 장면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그 장소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그들 누구 하나 덜 슬프고 덜 아플 수 있겠는가 마는 유독 나의 가슴을 싸르르하게 하던 장면은, 50대 중반을 넘긴 신사가 팔순의 북의 아버지를 붙잡고 ‘아빠’를 외쳐대며 또 다른 이별을 슬퍼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북의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아빠, 아빠"를 부르며 오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나는 행복하다"고도 했다. 50대의 신사가 ‘아버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아빠’라고 외치는 것을 듣고 "그래, 그에게도 나와 마찬가지로 아버님이 안 계셨던 게구나. 그러나 당신은 행복하구려"하고 부러워했다.
나는 유복자로 태어났고 50에 들어서 있다. 나에게 아버지라는 말은 추상적이다. 자라오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한번도 그 실체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가정에 경사나 어려움이 있을 때, 그리고 삶의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할 때, 나보다 더 고뇌한 후 삶의 지침을 줄 분이 간절할 때, 왜 그토록 뵙지도 못한 아버지가 그리웠었는지 모르겠다. 그럴 땐 차라리 아버님이, 남북이든 월북이든 북에라도 계셨으면 기다림이라도 있지 하곤 했다.
약혼을 하고 결혼 1년 전에 장인이 돌아가셨다. 그때 장인은 한 고등학교에 재직하고 계셨는데 갑자기 고혈압으로 세상을 뜨신 것이다.
유복자로 자란 터라 결혼하면 장인을 아버지라 부르며, 살아가는 지혜도 여쭙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꾸중도 듣고, 이렇게 앞날을 살아갈 수 있겠다는 사실에 정말 행복해 했었다.
허락만 된다면 정말 남들이 없는 데서는 아빠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결혼을 앞두고 돌아가신 것이다. 그 소식을 듣고 장례 전 이틀을 정말 친아버지 돌아가신 이상으로 눈이 퉁퉁 붓게 울었다.
이산가족의 아픈 이별의 장에서 보았던 그분도 아버지를 평생 그리며 살아온 삶이었음에 틀림없다.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이 되뇌어온 그 말이었기에, 그리고 이제는 허공에 대고 공허하게 하는 말이 아니었기에, 그는 감히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원래 우리 세대는 ‘아버지’나 ‘아버님’이지 ‘아빠’라 부르며 자란 세대가 아니다. 아빠라 부르며 자란 세대는 핵가족이 보편화되면서 아버지가 전통적 근엄한 위치에서 내려와 남의 눈치 안보고 자식들 무등 태우고, 맛있는 것 마음껏 먹이게 되면서, 어쩌면, 아버지와 친구처럼 가깝게 지내며 자라온 세대이다.
그들도 언제부터인가 철들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아빠가 아버지로, 아버님으로 바뀐다. 그런데 우리 세대인 그가, 팔순의 아버님을 붙잡고 ‘아빠’라고 절규하고 있었다. 어떻게 천연덕스럽게 아빠를 외칠 수 있었던 걸까.
이는 아마도 세월 따라, 세대 따라 아버지에 대한 호칭도 변한다는 사실을 배울 기회를 빼앗겼던 이 땅의 슬픈 아들들 중 하나였기에 가능할 수 있었던 듯 싶다. 그래서 자식을 낳고서야 그 자식에게서 배운 아빠라는 신세대 말만을 자연스럽게 익혔던 것이리라 짐작된다.
그는 50을 넘겨 노년으로 접어드는 나이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아빠라 부를 수밖에 없는, 아빠라 부르며 자란 신세대의 어린 자식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무치도록 보고팠던 아버님을 만나면서 어린 아이처럼 아빠라고 외치던 50 중년의 모습은 그래서 어색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의 자식들이 더 성장하여 그에게 아버님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어 배우게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아버님이라고 부르게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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