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일이란 참으로 알 수가 없다. 어느 것도 완전한 것이 없다. 이렇게 하면 저것이 나빠지고 저렇게 하면 이것이 나빠진다.
홍선 대원군은 왕족이면서도 철종의 외척 김씨의 세도에 밀려 그저 목숨이나 부지하려고 온갖 수모를 감내하며 살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작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자 세상은 한 순간에 바뀐다. 대원군은 어린 아들을 대신해 섭정으로 정치 일면에 나선다.

천하는 대원군에 손에 잡힌다. 거칠 것이 없다. 이러한 대원군은 중전의 간택을 서두른다. 그러나 신중함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선왕들이 외척의 힘에 눌려 왕권이 약해진 역사적 사실을 경험으로 다시는 이러한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외척의 세력이 약한 것이 중전의 간택에 중요한 요소였다.

경기도 여주의 작은 마을에서 유모와 함께 살고 있던 대원군 아내의 먼 친척인 사고무친 민씨 처녀는 이러한 조건을 갖춘 대다 영특함이 돋보여 중전으로 안정맞춤의 규수였다. 이렇게 민씨 처녀는 대원군과 운명적인 만남을 시작하게 된다. 그 민씨 처녀는 조선반도에 불어오는 역사의 회오리바람을 가냘픈 여자의 몸으로 막으려 했던 비운의 명성황후였다.

왕의 아내인 중전은 당대의 세도가나 훌륭한 가문의 여식에게서 간택되는 것이 상식이었건만 민씨 규수는 정반대의 환경이고 조건이 나빠 간택되었으니 사람 팔자는 도저히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대원군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기 위한 준비는 추호도 이상이 없었다.

왕의 외척은 최초 단계에서 차단되었고 나이 어리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아들인 왕은 아버지의 섭정에 조금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대원군의 천하는 완전한 듯 보였다. 그러나 세상일이란 완전한 꼴을 보지 못한다.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난다.

대원군의 권력에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난다. 그것은 외척도 아니요 왕인 아들은 더더군다나 아니다. 바로 자신이 그렇게 신중하게 간택한 중전에 의해 조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원군은 분노하였으나 대세는 기울어 권력에서 축출되는 수모를 겪는다. 중전의 영특함이 대원군의 아킬레스건을 맞춘 화살이었다.

대원군에게 다시 한번 중전의 간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흥미로운 상상을 해본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원군이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이 있다. 두 사람의 만남은 악연이었나 보다. 뭔가 알 듯 모를 듯한 인생의 교훈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