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만평방km 남짓한 작은 나라 한국은 역사상 보기 드문 거대한 ‘스테디엄 코리아’가 되고, 툭하면 갈가리 찢겨 종주먹질과 사나운 눈초리를 주고받았던 4,700만 한국인들은 너나없이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한마음 한몸뚱이가 되고, 거기다 새벽잠을 설치고 일터로 향하는 아침걸음을 늦춰가며 태평양 너머에서 목이 쉬어라 같은 열망을 뱉어내는 200만 미주한인 등 지구촌 곳곳 코리아안들까지….
한국축구대표팀이 14일 새벽(한국시간 14일 밤) 인천 문학경기장에서 유럽강호 포르투갈을 상대로 대망의 월드컵 16강고지 정복을 위해 마지막 땀을 쥐어짜고 마지막 투지를 불사르는 동안, 아니 훨씬 그 이전부터 ‘우리’는 또다시 하나가 됐다. 100만명 이상 구름떼 인파가 서울 광화문 네거리로 시청앞 광장으로 LA 코리아타운 캘러리아로 모여들어 붉은 해일을 이루며 태극전사들의 선전을 절규했다.
도대체 축구는, 월드컵은 무엇인가. 월드컵축구의 그 무엇이 사람들을 그토록 뜨거운 격정의 바다로 내모는가.
혹자는 말한다. 공 하나만 있으면 맨발로도 즐길 수 있는 가장 값싼 구기종목이란 점이 축구를 지구상에서 가장 보편적 언어로 성장시켰다고.
그러나 손쉬운 놀이 측면에서 핸드볼이 축구보다 못할 게 없다. 이같은 논리상 빈틈을 메워주는 통설은 있다. 축구의 격전이야말로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야수성을 합리적으로 폭발시키는 가장 그럴싸한 도구라는. 인간이 분노할 때 기쁠 때 발로 무엇을 걷어차는 원초적 행위가 공을 차는 행위와 닮은꼴이란 보충설명도 곁들여진다.
그렇다면 살기마저 번득이는 복싱·격투기·레슬링 등 보다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종목들이 감히 축구의 인기를 넘보지 못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가. ‘축구 신도들’의 말문이 이쯤해서 막힐 리 없다. 투기 종목들이 인간의 야수성을 거의 원형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지각있는 구경꾼들에게 노상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본 듯한 느낌을 줘 등을 돌리게 만드는 반면 축구는 야수성 표출의 인정선을 아슬아슬 넘나들되 끝내 일탈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전편에 대한 그리움이 온존하게 하고 다음편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부추긴다는 등등.
어쨌든 축구는 축구다. 그중 백미는 월드컵이다.
그 월드컵을 개최한 한국은 어느덧 아시아를 넘어 세계수준에 육박하고 있음을 지난 몇달동안 실력으로 보여줬고 14일자 아침 신문이 배달되는 바로 그 시각, ‘유럽의 브라질’이라는 우승후보 포르투갈을 맞아 16강 진출여부가 걸린 한판승부를 벌이고 있다.
90분 전투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는 순간 누가 웃고 누가 우느냐 여부와 관계없이 한국축구는 이제 세계적 강호들이 업수이 여기지 못할 만큼 성장했다. 지난해 초 취임이래 불과 1년5개월여동안 대대적인 물갈이와 체질개선으로 한국대표팀을 전혀 다른 팀으로 거듭나게 한 네덜란드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의 고집스런 조련덕분임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다.
문제는 활활 타오르기 시작한 고도성장의 불씨를 히딩크 이후 어떻게 지켜내고 키워내느냐 그것이다.
<정태수 기자>
jtsjeo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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