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대들과 함께한 2002년 여름을
▶ 독일에 0대1 패...29일 3-4위전
독일 1, 한국 0. 붉은 물결 붉은 함성으로 뒤덮인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전광판이 75분동안 움쩍않던 0의 균형을 깬 것은 후반 30분. 뚜벅뚜벅 정해진 속도로 걸어가던 전광판 분침은 그때부터 돌연 뜀박질을 하는 듯했다. 인저리타임 포함 20분 가까운 ‘남은 시간’이 검은 연기를 확확 내뿜으며 후딱 지나갔다. 한번 바뀐 숫자는 화석처럼 굳어 끝내 변동을 거부했고, 선척적으로 눈물샘을 떼어놓고 태어난 사람처럼 도무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동물적 승부사 거스 히딩크 감독의 깊게 패인 두 눈은 그제서야 인간적인 눈물방울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축구의 변방으로 취급받아온 한국이 월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전차군단 독일을 맞아싸운 25일 준결승전은 그렇게 진한 아쉬움을 남기고 결국 과거형이 됐다. 그러나 아쉬움이 전부는 아니다. ‘기껏해야 16강’ 아니면 ‘자칫하면 개최국 최초 1R탈락 불명예’를 뒤집어쓸지 모른다던 한국축구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 세계적 강호들을 줄줄이 물리치고 준결승 고지까지 진군한 것에 비하면 독일전 패배는 보다 큰 기적을 위한 작은 숨고르기 쉼표에 불과하다.
질풍노도에 올라타고 요코하마(결승전·30일)를 향해 줄달음쳐온 ‘태극호’의 행선지를 대구(3-4위전·29일)로 바꿔놓은 첫째 요인은 역시 체력이었다.
한국팀이 비록 상상초월 스태미너를 자랑하는 강철군단으로 경탄을 불러일으켰지만 16강전과 준준결승을 거푸 연장승부로 치른데다 휴식마저 매번 하루이틀씩 짧아 이미 파김치가 된 상태여서 오직 90분씩만 뛰며 3-4일 휴식을 꼬박꼬박 챙겨온 전차군단 독일을 상대로 정상플레이를 펼치기란 애당초 무리였다. 히딩크감독이 100년 한국축구사에 한 획을 긋는 결승문턱 8부능선 전투에서 미완의 대기 차두리·이천수 등을 선발대로 투입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렇다고 태극전사들이 불굴의 투지마저 잃은 것은 아니었다. 전반8분 차두리의 오른쪽 측면돌파에 이은 이천수의 논스톱 터닝슛으로 포문을 연 한국은 17분에도 차두리와 박지성의 콤비플레이로 세계최고골키퍼 올리버 칸을 거듭 시험에 빠지게 했다. 곧이은 전차군단 역습에서 올리버 노이빌레의 예리한 슈팅이 번득였으나 태극수문장 이운재의 거미손은 더욱 예리했다.
후반들어 한국은 피로누적으로 더욱 수세에 몰리면서도 26분 이천수의 중앙돌파로 요코하마행 집념의 불씨를 살려나가다 4분뒤 수비수 김태영의 역습출발 전진패스가 끊기면서 되레 노이빌레에게 오른쪽 돌파를 허용, 문전으로 쇄도하던 미하엘 발라크에게 통한의 결승골을 내주고 말았다.
히딩크감독은 주장 겸 수비사령관 홍명보를 빼고 설기현을 투입하는 등 총력공세로 맞섰으나 싱싱하고 육중한 몸에다 빅게임 관록에서도 몇수위인 독일의 냉정한 수비벽을 뚫기엔 역부족이었고 어렵사리 헤집고 들어가더라도 눈과 손을 몇개씩 더 가진 듯한 올리버 칸의 최후 바리케이드까지 관통하는 것은 너무나 벅찬 과제였다.
한국은 오는 29일 대구에서 브라질-터키전 패자를 상대로 3-4위전을 치르며 사상 7번째 결승고지에 오른 독일은 30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통산 4회 우승에 도전한다.<정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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