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열하는 태양보다 더 뜨겁게 타올랐던 월드컵 4강의 열기가 사라진지 3주가 지났지만 나는 아직 그때의 흥분과 감격을 간직하고 있다. 하여튼 TV앞에 서서 내 스스로 선수가 되어 같이 뛰었으니까. 아내는 이렇게 수선을 떠는 나를 보고 나중에 뉴스를 보면 될걸 왜 새벽부터 일어나서 야단이냐고 핀잔을 주다가 이탈리아 전 마지막 15분의 하이라이트 재방송을 보더니 그때부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스페인과 8강 전을 하던 주말에는 우리는 워싱턴 주를 여행하고 있었다. 우리가 묶었던 모텔에는 ESPN이 없어서 게임을 중계해주는 어느 한국식당을 수소문하여 밤중에 그곳을 찾아갔었다. 그 식당에 들어서니까 테이블이 다 치워진 홀 안에는 대형스크린 앞에 빨간 셔츠를 입은 한국의 이민이세 젊은이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 부부는 좀 늙었지만 곧 자연스럽게 이들 젊은이들 속에 묻혀서 이들과 함께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쳐대고 있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평소에는 아주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머리에 염색을 하고 이상한 몸차림을 하고 다니는 한국의 2세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해왔는데 이들과 함께 어울려 손뼉을 치면서 이들이 왜 이렇게 이뻐 보이고 기특해 보이고 믿음직스러워 보이는지 모르겠다.
우리 팀이 유럽의 강호들을 하나씩 무너뜨릴 때마다 터졌던 환성이 그동안 가난과 전쟁과 독재와 부패와 찌들렸던 민중의 한이 풀리는 순간들이었다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에서 화풀이하는 격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우리의 마음이 이렇게 후련해져 보기는 반만년 한국역사에서 처음일 것이다.
또 어느 할머니 한 분은 소란을 떠는 손자들 틈에 끼어 게임을 보다가 서로 공을 가지려고 발길질하고 부딪치고 몸싸움하다 넘어지는 것을 보고 하는 말씀이 “쯧쯧, 공을 하나 더 주어서 서로 사이좋게 놀게 하지 왜 저렇게 싸우노” 하셨단다.
그렇다. 이 할머니 말씀에 일리가 있다. 우리는 이겨서 신났지만 진 팀들의 참담한 심정들을 헤아릴 줄 알아야한다. 이것이 승자의 정신이다. 이제 월드컵 열기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한국의 불굴의 정신을 확인했고 이 정신을 이어나갈 이민 2세들은 이들의 뿌리를 확인했다.
브라질과 독일이 결승전을 하던 날 나는 그만 맥이 빠져 잠을 자고 있었는데 시끄러워 눈을 떠보니까 아내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결승전을 보면서 손뼉을 치며 혼자 흥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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