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은 의정부 여중생 사망사건에 대한 미군측 형사재판관할권 포기여부를 놓고 시끄럽다. 벌써부터 법무부 요청을 거부하려는 주한미군 내부의 움직임이 감지되기 때문인데 명분은 다름 아닌 ‘전례가 없다’는 것. 굳이 SOFA의 형사재판권 규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어느 쪽이 주도권을 쥐느냐가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라 주한 미군측의 이기적이고 되지도 않을 무책임한 명분이 기막힐 뿐이다. 그런데 이 기막힘에 대한 기시감(dejavue)은 뭘까.
마감에 임박해 한창 널뛰던 오후. 석달전의 교육기사를 보내줄 수 있느냐는 부탁전화를 받았다. 하던 일을 미뤄놓고 찾아보니 큰 도표가 있는 통판 기사인지라 필요한 내용만 간추려 보내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용도를 물었다. "저…그냥…총영사님께서 자제분 교육 때문에…".
심부름(?)하던 영사관 직원은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 듯 우물쭈물 말끝을 흐렸다. 하필 마감시간에…하는 답답함이 있었지만 필요하겠다 싶은 기사를 모두 찾아 보내 주었다.
그런 한편 기자는 지난달 LA총영사관 앞으로 최근 5년간 교육예산 집행내역서를 요청한 바 있다. 바로 보내겠다던 서류는 ‘한국서 손님이 오셔서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한달이나 미뤄지더니 서너 차례의 재촉에도 감감 무소식. 결국 문서로 다시 요청한 후에서야 비로소 서류봉투가 도착했다. 그러나 내용은 엉뚱하게도 4년간의 ‘주요업무현황’. "바빠서 정리해 놓은 것도 없고, 있다 해도 살림살이까지 다 보여줄 순 없기 때문"이라는 영사관측 설명에 따져 물었더니 대뜸 "이런 건 한국 기자들도 요청하지 않는다"며 자못 타이르는 어투다. 기가 탁 막혔다.
공관의 정부예산 집행내역서에 대한 언론의 공개요청 전례가 없다? 또 ‘전례 없인’ 부응할 수 없다? 그것도 한국의 업무관례를 기준으로?
이같은 처사는 표면적 심각성의 우위를 떠나, 국가인권위의 조사에 불응하고 여중생이 장갑차에 압사당한 교통사고를 단순사건으로 취급해 ‘전례가 없다’고 일축하며 오히려 한국측의 재판권포기를 주장하는 주한미군의 부당한 고자세와 꼴이 닮아 언짢다.
정말 바빠서 미뤄졌던 걸까.(바쁘기로 하자면 기자보다 더 할까) 엉뚱한 서류를 보낸 의도는 뭘까, 정말 정리된 문서가 없는 걸까, 아니면 왜 안 보여주려는 걸까. 자꾸 자꾸 궁금해져 못 견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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