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망대
▶ 신기욱 스탠포드대 사회학/국제학 교수
여성으론 처음 총리가 된 장상 전 이대 총장이 요즘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국적 및 학위 논란,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휘말려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 어려울 지경이다. 언론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국회 청문회를 대신 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시비’ ‘의혹’ ‘논란’ 등의 의문부호만 나열했지 뭐하나 명쾌하게 비리를 확인한 것이 없다. 아들의 국적 문제만 해도,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 국적을 유지하는 것이 뭐 그리 큰 죄가 되는지 알 수 없고, 프린스턴 신학대학원 졸업을 프린스턴대 신학대학원 졸업이라고 했다며 양심불량자처럼 취급하지만 말꼬리 잡는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장 총리서리가 총리로서의 업무수행 능력에 문제가 있다거나 비리가 있다면 당연히 검증 받고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총리로서의 일을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자극적인 언어를 동원해 재를 뿌리는 것은 책임 있는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도자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 우리의 고약한 문화 수준이다. 누가 조금만 더 나은 것 같으면 여지없이 깎아 내리며 하향 평준화시켜 버리는 잘못된 의식구조와 문화 말이다. 어찌 큰그릇이 나오고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우린 뼈아픈 식민지 경험을 했다. 그중 가장 가슴 아픈 유산은 존경할 만한 지도자를 키울 수 있는 토양을 잃어버린 데 있다.
500년의 전통을 지닌 조선의 문화와 유산은 일제가 만들어낸 ‘조선사회 정체성’ 이론 속으로 묻혀 버렸고, 이광수나 최남선 같은 지식인은 일제 말 친일을 한 죄로 우리 지성사의 본류에서 지워져 버리고 말 았다.
과거의 부정 속에서 출발한 남북한은 각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외래 문화와 시스템을 들여왔지만 정신적, 사상적 빈곤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또한 이승만, 박정희, 김일성과 같은 남북한의 지도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존경을 받지 못했으며, 첫 노벨상을 수상한 DJ는 참담한 심정으로 임기 말을 보내고 있다.
우리에겐 과연 롤 모델이 있는가? 이광수는 친일을 해서 안되고, 박정희는 독재를 해서 안되고, DJ는 아들 관리를 제대로 못해서 안되고… 난 이들을 변명할 생각도 또 변명해야 할 이유도 없다. 지도자로서 제 역할을 못한 부분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깎아 내리기 풍토에서 과연 살아남을 자가 있겠는가? DJ에 대해 지금도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은 그가 97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 YS에 대해 취했던 모습이다. 곤경에 처한 YS에 대해 비판하고 그의 실정을 부각시키는 데 몰두한 나머지 YS가 잘 했던 부분을 인정해주고 어려움을 좀 감싸주는 아량을 전혀 보이지 못했다.
우리는 스타 지도자를 만들 필요가 있다. 마이클 조던이나 타이거 우즈 같은 스타들이 농구나 골프의 대중화와 활성화에 미친 영향을 보라. 이들 스타를 만들어 냄으로써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사실 조던이나 우즈가 아니다. 농구와 골프라는 스포츠 자체이다.
그런데 조던이나 우즈가 단지 그들의 실력만으로 스타가 되었겠는가? 아니다. 그 뒤에는 농구계와 골프계의 주도면밀한 스타 만들기가 있었다. 스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도 한 번 스타 지도자를 만들어 보자. 한국에도 또 여기 커뮤니티에도 스타 리더를 만들어 보자는 말이다. 손끝에 묻은 때만 지우려 하지말고 그 손가락이 지향하는 방향을 보는 여유와 아량이 한국이나 미주 한인 사회 모두에게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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