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익환 칼럼
▶ - 의식주 순례 (3) -
주식이던 부식이던 좋은 음식을 먹고 싶어하는 인간의 욕망이 작게는 개인의 건강을 좌우하기도 하지만, 크게는 역사에 남을 특이한 행동을 유발시키기도 했다.
일본의 경우, 왜구(倭寇)로 알려진 그들이 신라, 백제의 남해안을 자주 침범한 원인은 ‘쌀’의 절대량이 부족한 때문이었다. 조선조 세종 때에는 매년 세사미두(歲賜米豆) 2백석을 받아 가기도 했지만 그들의 야망은 선조때 임진왜란이란 해적행위로 돌변했다.
유럽인의 경우, 그들은 그들의 주식인 돼지고기의 부패를 방지하고, 구미( 味)를 돋구기 위한 조미료 ‘후추’를 구하기 위해 항해시대를 열었다. 그들의 이같은 연장선이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이고, 식민지의 건설이며, 인디언 소탕으로 이어졌으니 가히 후추의 위력을 짐작할 것이다.
후추는 그렇다 치고 우리 한국인의 구미의 바탕은 무엇이고 우리의 구미가 미국에 건너와 수난을 겪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한국의 토산물과 해산물의 뛰어난 맛들에 익숙한 우리가 이곳 미국 땅에 와서 미국음식을 계속 먹기가 힘든 것은 체질적으로 굳어진 우리의 구미가 이곳 음식과 맞지 않는 신토불이(身土不二)의 연고 때문이다. ‘신토불이’란 문자 그대로 자기 자신과 자기를 키워 준 땅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로 묶어 "우리는 우리 것이 좋다"는 토착 정신을 두고 한 말이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기가 무섭게 먼저 찾는 것이 한국 식당이요 한국 음식이다. 신토불이에 젖은 미각(味覺)의 강한 욕구 때문이다. 혀(舌)에는 미각을 감지하는 미역(味域)이 있는데 미국이나 서구 사람들은 시(酸)고, 쓰(苦)고, 달(甘)고, 맵(辛)고, 짠(鹹) 오미(五味)의 미역이 발달해 이것으로 맛을 가늠하지만 우리 한국 사람은 이 오미를 중화(中和)시키고 순환(循環)을 돕는 삭은 맛(酵)과 떫은 맛(澁)을 더 가미해 칠미(七味)로 보다 많은 맛을 맛보면서 살아 왔다.
속칭 서른 여섯 가지나 된다는 김치가 그렇고, 간장 된장 고추장 등 3장(三醬)이 그렇고, 그 많은 종류의 젓갈과 장아찌들도 떫고 삭은 맛인 발효(醱酵) 식품이다. 우리 한국 사람이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에 가미하든 먹어낼수 있는 것도 미역의 특수성 때문이다. 속담에 ‘음식은 장맛에 달렸다’거나 ‘말 많은 집에 장맛도 쓰다’는 말은 장맛이 구미를 좌우하고, 장맛 내기가 그만치 어렵다는 비유다.
우리 한국 사람만이 중국 음식이나 생선 또는 튀김을 먹을 때 유별나게 간장을 찍어 먹는 거나, 느끼한 중국 음식을 먹고 입맛이 텁텁할 때 김치 생각이 나는 것도 오미(五味)에 압도되어 참고 있었던 삭은 맛이 흥분한 탓이다.
근년에 우리 김치가 일본식 발음 기무치(Kimuchi)가 아닌 김치(Kimchi)라는 단어로 공인되어 개정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실렸고, 2001년 7월에는 제네바에서 열린 제24차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 우리 김치가 국제규격식품으로 공식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뉴욕 UN본부 식당 메뉴에 김치가 등장하고, 최근 광주 비엔날레 김치대축제에서 주한 외국인 대사 부부들이 자진해서 김치를 당궈보기도 했다. 이 정도면 김치에서 우러나오는 담백한 ‘한국의 맛’이 이제 ‘세계의 맛’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 된다. 발효된 간장 된장 고추장 등 3장도 이미 미국 시장에서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런데 최근 본국 초등학교와 이곳 한국학교 아동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식생활 조사에서 ‘김치’가 가장 싫어하는 음식으로 뽑혔다고 한다. 다른 음식도 아니고 우리 전통 음식의 대표격인 김치가 우리 어린이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음식으로 추락된 것은 일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대신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은 햄버거, 피자라는 것이다.
‘김치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김치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간장 된장 고추장 등 3장과 함께 우리의 전통이며, 우리의 문화이며, 우리의 건강이며, 우리의 자랑이다. 건강하려면 50년전의 ‘시골 밥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그 식단인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늘날 젓가락 대신 포크를 사용하고 김치 대신 햄버거와 피자를 먹겠다는 어린이를 만나고 있는 것이다.
부부의 구미는 닮는데 그 부부의 구미가 왜 자녀에게 와 닫지 않는지 생각해 볼일이다. 물론 구미를 유혹하는 선전 매체에 쉽게 감수되는 어린이들의 탓도 있겠지만, 우리의 전통 음식을 가정에서 만들어 자녀들과 같이 맛을 보고 느끼는 가정내에서의 구미공동체( 味共同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부부 밥상 따로, 자녀 밥상 따로’라는 신조어이다. 마치 어머니로부터 태어난 아기가 모유 대신 우유를 먹고 자라 어머니와 같은 체질이 아닌 것과 흡사한 말이다. 혹시 이곳에서 우리 2세들이 김치를 싫어하는 것은 고사하고, ‘우리 것은 모두 처지는 것이고, 미국 것은 모두 좋은 것이다’라는 잘못된 의식마저 갖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매우 걱정스럽다.
/ikhchang@aol.com 멤피스 한인사 편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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