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이를 생각하면 항상 미안한 마음밖에 없다. 아이가 채 돌이 되지 않은 때부터 목회를 한답시고 거의 시간을 같이 못 보내다가 정작 아이에게 아빠가 가장 필요한 시기인 유치원 시절부터 초등학교까지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한 채 휘청휘청 지냈다.
내가 원인 모를 병으로 쓰러져 극심한 고통 속에 있을 때 아이의 소원은 아빠하고 야구공 주고받는 일이었다. “아빠, 공놀이하자”라는 요청에 누워서 눈을 감은 채 “나중에 해주마”라는 대답밖엔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3~4년을 아이는 외롭게 지내다 그의 인내도 한계에 달했는지 어느 날 아이는 아내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엄마! 가족이라면 엄마, 아빠하고 같이 밥을 먹고 오순도순 이야기할 수 있고 같이 공놀이라도 할 수 있어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우리 집은 지금 뭡니까? 엄마는 일한다고 일찍 집을 나가고 아빠는 아프다고 누워만 있고 하나밖에 없는 형은 이제 나랑 놀아주지도 않으니. 내 Life가 이게 무슨 Life입니까?”
4학년 아이의 입에서 나오는 현실적이고도 논리 정연한 말에 반박도 하지 못하고 아내는 그저 쓰라린 마음으로 아이를 다독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내의 다독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이는 귀를 의심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
“엄마, 아빠를 바꿔주세요! 백인이든 흑인이든 나랑 놀아주고 대화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이면 되요.”
당돌한 요구였지만 아이가 너무도 진지해서 아내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어 한동안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난 아빠가 지금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어도 그냥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단다”라고 대답을 해줄 수밖에.
그 후 어린 거북이를 두 마리 사서 주었더니 아이는 온 마음을 다해 거북이를 돌보았다. 그런데 어느 날 거북이를 바람 씌워준다고 학교 갈 때 밖으로 내놓았더니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햇볕에 그만 타죽고 말았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죽은 거북이를 안고 두시간이나 말없이 앉아 있었다.
거북이를 묻어주자는 제의에 겨우 일어선 아이가 시간을 좀 달라고 하더니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카드를 한 장 써 가지고 나왔다. 거북이게 말하는 마지막 말이란다. 아이가 삽을 가지러 간 사이 카드를 살짝 읽어보았다. 이렇게 쓰여 있었다. “거북아, 너는 나의 Life였다. 나는 너에게 말하고 너는 나의 말을 들어주었다. 짧았던 행복. 잘 가거라.”
유난히도 정이 많고 논리가 정연한 둘째 아이의 마음을 그 이후로도 만족시켜 줄 수가 없었다. 사실 첫째아이에게 한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의 표현을 했지만 여전히 둘째 아이의 마음엔 아빠의 자리가 텅 빈 공간으로 남아있다. 웃음을 잃고 말문을 닫고 지극히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둘째 아이를 보며 어린아이들에겐 필요한 때에 그 자리에 있어주지 않으면 그 이후엔 그 무엇으로도 그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프기 때문에, 여건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에… 라는 이유조차도 변명에 불과한 것이었다.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방법으로 사랑 받기를 원한다. 그래서 서로 사랑 하면서도 사랑 받지 못하는 것으로 오해한다.
아빠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아빠의 태도를 바꾸어달라는 뜻으로 받아 들였다. 어제 아이에게 편지를 써서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이제 내가 나를 바꾸마.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너를 바꾸라고 말하기 전에 네가 원하는 아빠의 모습이 되기 위해 노력하마. 하지만 사랑하는 내 마음은 잊지 말기를…”
김홍덕 목사 ·조이장애선교센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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