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100주년을 맞는 해의 첫 토요일, 샌프란시스코 코리안 매스터 코랄 합창단은 기념 음악회를 화려한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성황리에 가졌다.
그 날의 진가는 단연 코리아 환상곡에 있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작품이다. 첼리스트이며 작곡가 지휘자였던 그는 1938년 아일랜드에서 자신의 지휘로 선보이면서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을 지휘할 때마다 이 곡을 소개했다. 코리아 환상곡의 주제 선율인 애국가가 작곡된 것은 1935년 11월, 한국이 식민지였으니 고국을 떠나 살던 우리 민족들이 불러온 곡이다. 더욱이 1936년 1월 샌프란시스코 대한인 국민회에서 출판한 애국가 악보가 초판이라니 남다른 감회를 갖게 된다.
코리아 환상곡은 해방과 전쟁을 겪으면서 계속 수정하여 지금은 순수 관현악 곡에서 성악파트가 첨가되고 곡 전체가 하나의 악장으로 통합되었다. 악보는 네 부분으로 구분되어 진다. 제1부는 한국의 개국을 알리는 평화로움이 민요와 애국가 주제 선율로 이어진다. 주로 관악기들로 시골의 목가적인 정취를 살려 준다. 제2부는 일제 수난기 백성들의 암울한 모습, 그런 고난 속에서도 일어서는 3.1운동의 팡파르가 간간이 현악기까지 합쳐지면서 억압과 가난을 공분한 이들이면 누구나 가슴을 에이게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제3부는 해방의 기쁨을 4부 합창과 관현악으로 끈질기고 포기하지 않는 민족, 작으면서도 당찬 그리고 남다른 예술성을 지닌 민족의 모습을 표출해 낸다. 그러나 6.25사변의 또 다른 고난으로 3부를 끝낸다. 제4부에서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시 찾은 조국의 영광과 발전을 기원하는 ‘대한 대한 만세’를, 모든 관현악과 합창단은 애국가를 부르면서 대단원을 내린다.
코리아 환상곡은 여기서 끝나면 안 된다. 이제 통일 후 제5부를 만들어야 한다. 공연이 끝나면서 관객들도 함께 애국가를 불렀다. 우리들 감성의 물결이 모국에 대한 진한 사랑으로 몸 속 깊이 녹아드는 듯 싶었다.
나는 그 순간 군대시절 사단장이었던 이세규 장군 생각이 났다. 강원도 산골 사단 사령부의 하기식 때면 애국가를 4절까지 부르지 못하면 퇴근시키질 않았다.
그런데 20년 전, 서울 시립교향악단이 여기 데이비스 홀에서 공연을 끝내면서도 모두 일어서서 애국가를 합창했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 나는 목이 메어 다음 소절을 부를 수가 없었다.
그 후 청렴하고 강직했던 그 분에 대한 글을 발표했다. 어느 날 저녁 정말 뜻밖에도 그의 전화를 받았다. 샌호제에 거주하는 육사 동기되시는 분으로부터 그 글을 받아 보았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잊지 않고 자신을 인정하는 글을 썼음이 기쁘다면서 나의 비즈니스가 화재를 당한 걱정까지 하셨다. 그 분은 3선과 유신반대로 받은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오래 전 세상을 떠났다. “적군이 아닌 나의 부하들로부터 고문 받아 불구자가 되었습니다” 동아일보 광고탄압 시에 이세규 장군의 절규하는 광고 문구가 생각나 목이 메어 왔다.
진통을 겪고 있는 모국, 보수이던 혁신이던 그것이 분열로 이어진다면 한번쯤 해외에 나와 애국가를 불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함께 부르면 어떤 격(隔)도 넘어서게 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될 터이니까.
공연이 끝나고 간단한 리셉션이 있었다. “별안간 눈물이 나서 애국가를 부를 수가 없었어” 아주 좋은 남자 목소리에 돌아보니 무대에 섰던 합창단원이었다. 처음 보는 젊은이였지만 그가 형제처럼 느껴졌다.
이재상<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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