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싹 마른 김우중씨가 담배연기를 뿜으며 식당에 앉아있는 사진 위에 빨간 글씨로 ‘WANTED’(수배인물)라고 제목을 달아놓았다. 그리고 페이지 한 장을 넘기면 김우중씨 허수아비를 대우 노조원들이 화형식하는 사진이 실려 있다. 2월3일자 ‘포천’지의 김우중 특집 내용이다. 특집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한국에서 가장 존경받았던 그리고 최근엔 가장 유명한 도망자가 된 김우중씨는 명성과 걸맞지 않았다. 한때 정장차림으로 멋있는 비즈니스맨으로 유명했던 대우 회장은 이날 시골집에서 면바지에 맨발의 초라한 모습이었다. 그는 3년 전보다 자신의 허리가 4인치 줄었다고 했다."
’루이크라’라는 포천지 기자가 김우중씨와의 평소 친분을 생각해 그에게 변명의 기회를 주려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사진도 우스꽝스럽고 편집 전체가 어두워 마치 영화 ‘도망자’의 주인공과 인터뷰한 것처럼 보인다.
사람이 자신이 없어지거나 분노에 사로잡히면 실수가 연속으로 터진다. 입을 꾹 다물고 있었으면 김우중씨에 대한 평가가 오히려 나아질텐데 왜 기자를 불러 인터뷰했을까. 적어도 김우중씨 정도의 경제계 거물은 자기 변명을 하지말고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는 자세를 견지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가 포천지 기자와의 회견에서 외부에 전하려고 한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15년이 걸리는 일을 5년에 이루려고 한 것이 나의 실수였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하려고 했다." "정부가 도와 주었으면 대우는 살아날 수 있었다. 대우의 사업계획을 정부가 승인해 놓고 돌아서서는 목을 조이는 법이 어디 있는가.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면 행간 곳곳에 정부를 원망하는 한이 서려 있고 과거만 생각하면 분노에 잠을 못 이루는 기색이 역연하다.
김우중씨는 한국 기업의 신화였고, 1967년 1만달러로 시작한 그의 비즈니스는 성공 스토리의 본보기였다. 그는 젊은이의 우상이었다. 그가 쓴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베스트셀러로 200만권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웠으며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그런 인물이 자신의 비즈니스 실패에 대해 해명하고 있으니 무게에 어울리지 않는다.
대우가 진 빚은 자그마치 650억달러다. 얼마전 미국을 뒤집어 놓은 ‘엔론’이 부도낸 돈은 20억달러에 불과하다. 월드컴 파산도 그 정도다. 650억달러면 천문학적인 숫자다. 15년이 걸리는 일을 5년에 이루려고 한 것이 자신의 잘못이었다고 김우중씨는 말하고 있지만 왜 참모들이 그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간언을 못했을까. 김우중씨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공, 성공, 성공 하는 사람들의 병은 성공을 하기 위해 너무 많은 것을 희생시킨다는 점이다. 헨리 포드가 말년에 어떻게 되었는가. 정주영씨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는가. 성공은 했지만 스타일을 구겼다. 독선에 사로잡혀 회사가 동맥경화증에 걸린 것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대우 자동차의 재산 절반만 팔아도 70억달러는 받을 수 있었고 그 돈이면 대우의 빚을 한 번에 갚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비즈니스가 잘 나갈 때는 뭐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안 된다는 소문이 나면 그냥 준다해도 상대방에서 배짱 부리는 법이다. 부동산 파동이 일어나면 건물을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파산 확률이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건물을 팔아 빚을 정리하려 해도 팔리지가 않고 페이먼트만 늘어나게 마련이다. 110개국에 32만명의 종업원을 둔 대우 총수가 최악에 대비하는 대책이 없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김우중씨는 마음을 비우지 못하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것 같다.
이철 칼럼 chul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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