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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영(서울경제 뉴욕특파원)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관광하면 곳곳에서 에비타의 향취를 느낄수 있다. 대통령궁 앞 공원인 플라사 데 마요 광장, 레콜레타 공원묘지에는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의 부인 에비타의 기념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외국 관광객을 위해 에바(에비타의 애칭) 관광코스도 만들어져 있다.
아르헨티나는 마돈나가 주연한 영화 ‘에비타’의 무대다. 노동자의 힘을 빌어 정권을 장악한 페론 장군과 에바의 스토리는 혁명과 야망으로 점철된 1940년대 아르헨티나의 역사이지만, 오늘 아르헨티나 경제를 이해하는 관건이 되고 있다.
페론은 “인민의 폭력은 폭력이 아니다. 그것은 곧 정의다”고 주장했다. 사생아로 태어나 사창가를 전전했던 에비타는 잘생긴 페론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녀는 특유의 사교술, 웅변술로 노동자를 조직, 정치세력화하는데 성공했다. 페론과 에바의 결합은 포퓰리즘이라는 새로운 정치 패턴을 형성했다.
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는 바로 페론주의가 가져온 포퓰리즘의 결과다. 정부가 중앙은행의 인쇄기를 풀가동하며 돈을 찍어내 노동자 복지에 썼고, 그 결과는 연간 1,000%를 넘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이었다. 또다른 페론주의자 카를로스 메넴 대통령이 90년대초에 집권하면서 아르헨티나는 현지 통화 페소와 달러를 1대1로 교환하는 고정통화제도를 채택했다.. 메넴 정
부는 중앙은행의 인쇄기를 세우고 대신에 달러 보유액만큼 페소를 방출했다.
인플레이션은 해결했지만, 달러가 없으면 노동자들에게 빵을 줄 수 없는 형편이 됐다. 가진자의 빵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는 길 밖에 없다. 그런데 부자들은 도망갈 방법이 많다. 현지 돈을 달러로 바꾸어 외국으로 도망가면 그만이다.
아르헨티나는 2001년말에 경제 위기를 겪었다. 돈있는 사람들이 은행에 달려가 달러를 빼내 외국 은행에 옮겨놓았다. 은행에 달러가 고갈되면서 정부는 달러에 페소의 고정환율을 풀어버렸다. 페소가 폭락하고, 가난한 사람들마저 은행에 돈을 빼내는 이른바 뱅크런(bank run) 현상이 빚어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돈을 빌려줄테니 정부가 긴축재정을 채택하라고 요구했다. 정부가 살림살이를 줄이려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복지혜택을 줄여야 하고, 방만한 국영 기업의 근로자를 해고해야 했다. 허리띠를 졸라매기 싫어한 대중들은 곳곳에서 폭동을 일으켰고, 한달에 몇차례나 정권이 바뀌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지 한달여 지나면서 참여 정부의 경제정책이 포퓰리즘으로 흐른다는 지적이 국내에서는 물론 국제금융시장의 심장인 뉴욕 월가에서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의 톰 번 부사장도 2일 코참(KOCHAM) 세미나에서 한국의 포퓰리즘적 성격을 예의 주시한다고 지적했다.
노무현 정부는 소수 정부다. 여당이 소수당이고, 대통령 자신도 민주당의 주변부에 있었다. 이라크전 파병 동의안을 승인하는 과정에서 절반 가까운 민주당 의원들이 대통령의 뜻을 거역할 정도로 노 대통령의 정권 기반은 취약하다. 이런 취약성을 극복하는 방법이 포퓰리즘일 수 있다. 젊은 인터넷 대중, 사회단체(NGO) 등을 기반으로 제도정치권을 압박하고, 경제적으로 가난한자에 부를 나눠주는 정책을 쏟아내는 방법이다.
재경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법인세를 깎아주자는데, 청와대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기업을 가진자의 그룹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재벌 단체인 전경련의 굴복을 받아내고, 다른 한편으론 노동단체에 가서 ‘부의 분배’를 강조한 것이 포퓰리즘과 다를 게 무엇인가.
그런데 포퓰리즘은 정치인에게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수단이 되지만, 경제에는 독약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재정 적자를 감수하고 돈을 풀어야 하고, 따라서 금리가 폭등할 수밖에 없다. 가진자들은 투자를 하지 않고, 해외로 도망가려고 한다. 그 결과는 모두가 가난해지는 것이다.
한국의 새 정부 핵심에 과거 운동권 출신들이 많다고 한다. 그들은 진보라는 이름의 좌편향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방법이 가난한자를 더 가난하게 한다는 사실을 아르헨티나의 예로 알려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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