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자꾸 잊는다. 이민을 떠날 때가 그러니까 몇 살이었더라. 그 후의 세월은 정지된 느낌이다.
사계절이 뚜렷치 않아서겠지. 이민이라는 특수한 환경 탓일 거야. 그런데도 오랜만에 대하는 지인(知人)의 얼굴에서는 세월이 뚜렷이 보인다.
“연연세세 화상사, 세세연연 인부동(年年歲歲 花想似 歲歲年年 人不同).” 누가 읊은 구절이지. 그 구절이 그런데 왜 갑자기 떠오를까. 어김없이 찾아오는 명절 때문일 게다.
노동절 연휴가 아니다. 추석이다. 한국의 고유 명절이 찾아올 때마다 사계의 변화가 없는 무표정한 환경에서도 새삼 세월이 느껴지고 또 되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모를 일이다. 한국서는 덤벙덤벙 지냈는데…. 오랜 한가위의 추억은 한국인의 DNA에 깊이 저장돼 있다가 시즌이 되면 몸이 어디 있든지 망향의 염을 불러일으키는 건지.
“기러기 아빠는 추석을 기대하지 않는다.” 타임지 인터넷 판 기사다. 홀로 한국에 남아 미국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고 있는 스토리다.
그 이야기는 이렇다. 아버지는 40대 중반의 대학 교수다. 딸과 아내는 미국에 있다. 딸의 조기유학을 위해서다. 아버지는 연 4만여 달러 수입의 80%를 미국으로 보낸다.
아버지는 쓸쓸한 추석을 맞을 각오를 하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이런 기러기 아빠들이 줄잡아 1만7,000여명이 된다는 게 타임지 보도다.
흩어져 사는 게 현대인의 삶이다. 추석이란 이처럼 뿔뿔이 흩어짐에서 재회를 통해 가족을 재확인해 주는 기회다. 기러기 아빠의 추석은 그래서 쓸쓸하기만 하다.
한국판 기러기 아빠의 추석은 그렇지만 쓸쓸하지 않다. 소망이 있어서다. 한국에 처자를 두고 망향의 한을 달래는 미국판 기러기 아빠에 비해서는 더 그렇다는 생각이다.
이들에게는 추석이 근심이다. 고향집을 찾아가는, 그래서 기쁨으로 가족과 만나는 사람들을 이들은 부러움으로 바라본다. 추석은 이들에게 그러므로 서러움이고 고통이다.
그들 뿐 아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추석이 서러운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홀로 지내는 병상의 노인, 노숙자 등.
한가위란 무엇일까. 새삼 던져보는 질문이다. 세월의 무상함을, 망향의 염을 새삼 떠올리게 하는 명절이다. 특히 이민자에게는.
아니다. 정과 기쁨을 나누는 명절이다. 사는 곳이 고향이고, 기쁨은 나눌수록 커지고, 서러움은 나눌 때 사라져 하는 말이다. 올 추석에는 누구를 만나야 할까.
<옥세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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