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사겠단다. 한참 밑의 동생 같은 오래된 친구가 까닭 없이 맥도날드에서 만나자고. 우린 가끔 씩 만나 커피도 마시고 햄버거도 사 먹곤 한다. “뭐, 특별한 일이라도 있어요?” “오늘이 제 환갑 날입니다. ” “마이 굿네스! 그럼 벌써 60이 넘었단 얘기네!” 그러고 보니 그의 얼굴에도 세월의 주름이 나이 든 자리를 하고 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벌써 이십삼사년 전, 그가 30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그는 유명한 건강식품 회사에서 홍보 및 광고 담당을 맡고 있었고 회사 사업 확장을 위해 나도 잠시 그곳에서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
미국에 오는 이유들이야 다 다양하겠지만, 그는 헐리웃 배우를 꿈꾸며 미국으로 왔다고 한다. 속으로 좀 놀랐다. 헐리웃 배우를 꿈꿀 만큼 배우의 기질이 있어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헐리웃에 기웃거려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신분문제가 길을 막고 있었다. 다행히 한국어 교육자격증이 있어 취업 비자로 영주권 시민권 까지 확보는 했으나 헐리웃 배우의 꿈은 접기가 힘들었다고. 십여년 뒤, 내가 그를 다시 만났을 때는 그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고 했다. 배우의 꿈은 접고 시나리오 작가로 헐리웃에 진출해 보고 싶다고.
부지런히 다섯 편 가량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 작품들이 빛을 보기를 꿈꿨지만, 그것도 그저 꿈 속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부족한 영어 탓이었을까, 작품의 수준 때문이었을까? 1년에 한 두 번 정도 만나 근황을 들어보면 그는 늘 꿈을 꾸고 있었다. 신기한 건, 그의 꿈은 변하고는 있었지만 멈추거나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는 생존을 위해 우체부로도 일했고 우버택시 운전도 했다. 지금은 호텔에서 밤중 프론트 데스크에서 일하며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노래를 만들고 있다고. 직접 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까지 부른단다. 수 없이 많은 노래가 만들어지고 수없이 많은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지만 그 노래가 대중들에게 들려지고 인기를 얻기까지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다. 기획사도 없이 그저 노래 조금 잘 한다고 가수가 되는 건 아니라고 얘기해 보지만 몇 개의 노래는 한국에 이미 보내졌고 언젠가는 방송을 탈 거라는 희망적인 얘길 하고 있다. 참 믿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그가 3년 안에10만불을 만든 이야기를 들으면 그의 꿈도 이루어 낼 수 있겠다는 믿음이 가기도 한다.
적게 벌고 아주 아껴 쓴다. 싼 아파트에 살면서 외식은 절대 안 한다. 어쩌다 사람을 만날 때는 맥도날드로 간다. 자동차도 없애고 웬만 하면 걷는다. 결혼할 사람은 가난하다고 떠났고 어느새 싱글인 채 60이 되었다고. 그는 버는 것에서 상당 액수를 무조건 주식에 넣는다. 주식 배틀이라는 유투브 방송도 한다. 이제 목표했던 10만불도 만들었으니 노래의 꿈만 이루면 될 듯 하다.
힘들게 힘들게 그러나 꾸준히 지치지 않고 가는 그를 보며 경외감 까지 든다. 배우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그리고 이젠 가수로 방향을 바꾼 그의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나이 60에 데뷰하는 신인 가수를 그려본다.
조촐한, 아니 아주 화려한 맥도날드의 딜럭스 아침 메뉴로 훌륭한 환갑잔치를 했다.
<
로라 김 서예가ㆍ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총 1건의 의견이 있습니다.
좋습니다. 60인 그분에게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공유해주셔서 감사드리구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