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만 해도 한국에서 소위 똑똑한 여자들은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없었다. 여자가 똑똑하면 부담스럽고 ‘여성다운’ 매력이 없다는 것이 보통 남자들의 생각이었다.
시간을 조금 더 뒤로 돌리면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여성은 선거 때 투표를 할 정도의 지력만 갖추어도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20세기초 지배적이었다. “여성들이 투표를 하면 타고난 아름다움과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당시 분위기가 여성은 투표할 필요도 없고, 투표를 원하지도 않고, 투표할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는데 그런 주장을 펴느라 이런 설득까지 했다.
“주부들이여, 남편이 너무 술을 마셔서 주류통제법을 만들려고 투표권이 필요하다는 건가. 맛있는 요리를 해보라. 남편의 음주를 줄이는 데 투표 보다 훨씬 빠르고 효과적일 것이다. 베이킹 소다로 냉장고 청소만 잘 하면 될 일을 왜 식품 위생법 운운하며 투표를 하겠다는 건가”
1920년 연방법 제정으로 여성들이 참정권을 얻은 후에도 여성 표는 오랜 세월 구박을 받았다.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를 따라 투표할 테니 남성 표만 잘 모으면 여성 표는 저절로 따라오는 부속물이라고 여겨졌다.
시대가 바뀌어서 이제는 정치인들이 여성 표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다. 26일 축제 분위기에 한창 들뜬 민주당 전당대회 개막식장이 잠시 숙연한 적이 있었다. 빌 클린턴, 앨 고어, 힐러리 클린턴 등 민주당의 수퍼 스타들이 등장한 그 무대에 한 무명의 어머니가 동참했다. 9.11 테러 당시 임신한 딸과 사위를 잃은 여성이었다. 그는 찬찬한 어조로 국가가 국민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면 어떤 사태가 잃어날 수 있는 지를 연설했다.
그 여성이 왜 연사로 초청되었을까. 올해 대선은 ‘안보 엄마들’(security moms)의 표가 좌우한다는 분석, 그리고 ‘안보’하면 공화당으로 기우는 분위기를 민주당이 십분 의식한 결과이다.
정치인들이 소위 ‘엄마들’의 환심을 사려고 애쓴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1996년 대선 당시 ‘축구 엄마들’이 그 시초. 교외지역 백인 중산층 가정의 주부들로 아이들 뒷바라지에 온 정성을 쏟는 엄마들이다. 교육 개혁, 세금 감면 등을 이슈로 표를 던지면서 대개 남편 표까지 몰고 간 막강한 엄마들이다.
그후 98년 선거는 ‘웨이트레스 엄마들’의 해. 저소득층을 의식한 정책들이 주요 이슈로 등장했다. 올해 ‘안보 엄마들’이 부각된 것은 순전히 9.11 충격의 여파. “교육도, 경제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 엄마들의 주장이다.
어떻게 하면 이들 엄마에게 믿음직하게 보일 것인가 - 부시와 케리의 숙제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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