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개신교에서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수정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우연인가? 그 날 난 꿈속에서 난데없이 빌라도를 만났다. 꿈은 실 세상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케 하는 능력이 있다. 각설하고, 많이 피곤해 보이는 빌라도는 한국 기독교인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사연인즉 한국 기독교인들은 사도신경을 통하여 한 세기 이상을 자신의 명예를 훼손하고 있다며 자신은 그들의 주장처럼 예수를 학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그저 잘못된 곳에 잘못된 시기에 있은 죄밖에 더 있느냐는 하소연이었다.
그렇다면 빌라도는 무슨 근거로 그러한 주장을 했을까? 잠시 빌라도가 지적한 사도신경을 살펴보기로 한다. 빌라도가 문제를 삼은 것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대목이었다. 이 대목을 통하여 보면 빌라도는 예수에게 고난을 주고 십자가에 처형한 장본인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과 적대적 관계이다. 그러면 그것은 정말 진실인가? 만일 진실이 아니라면 한국의 기독인들은 어떤 잘못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 사도신경은 영어의 사도신경(The Apostles’ Creed)를 번역한 것으로 믿어진다. 번역은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원어와 일치하지 못하는 번역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그러한 결과를 오역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사도신경에서도 오역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올바른 번역은 다시 원문으로 환원이 가능해야 한다. 한국어 사도신경의 원본격인 영어로 된 사도신경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문장이 “suffered under Pontius Pirate”라고 되어 있다. 만일 한국어의 문구 “고난을 받으사”는 말을 다시 영어로 환원 번역하면 어떤 문장이 될까? 아마 “suffered under”보다는 “suffered from Pontius Pirate”로 되어질 것으로 본다. 예수가 직접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영어의 under는 from과 달라 직접 고난을 주었다기보다 예수가 같은 민족인 유대인으로부터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한 사건이 그의 치하에서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비록 산 자는 아니더라도 빌라도는 오해의 희생자라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한국의 천만 기독인들은 매주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사도신경을 통하여 빌라도를 비난한다. 이는 집단 언어폭력이다. 불행하게도 이 문제의 문장은 이번 수정작업에 포함되지 않았다.
나는 꿈속 빌라도의 주장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공감했다. 모르고 했다고 반드시 폭력으로부터 자유스럽지 못하다. 한국의 기독인들도 빌라도의 이유 있는 항변에 심각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탄절이다. 성탄의 의미가 질시와 비난이 아니고 용서와 화해라면 이 세기를 넘는 오해와 비난은 중단되어야 하며 그러한 결과에 대해 빌라도 역시 용서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는다.
백향민 영어 음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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