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주/토랜스
세월은 항상 가는 줄만 알았는데 끊임없이 오고 있다. 꽃다운 청춘이 가는 세월이라면 아름다운 노년은 오는 세월이다. 자연은 순환의 묘미가 참으로 위대하다.
세모의 인파가 넘친다. 낭만의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캐롤이 퍼진다. 훈훈한 온정이 우리의 가슴속을 파고든다.
어느새 한해가 이렇게 넘어가고 새해는 문턱에 와 있다. 매년 연말이면 한 해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려고 송년파티를 찾는다. 흥청망청 요란한 파티도 있고 썰렁한 파티도 있다.
조촐하고 오붓한 파티가 있는가 하면 불우이웃을 돕는 자선파티도 있다.
기분이 좋으면 송년회가 되고, 답답하면 잊어버려야 할 망년회가 되고, 속이 뒤집히면 망할 망자 망년회가 된다.
송년회의 단골 인기메뉴는 말할 것도 없이 술과 웃음 보따리. 삼겹살 파티, 맥주 파티, 룸살롱 파티, 이렇게 3차까지 이어지던 고국의 연말 풍속은 이제 향수에 젖은 먼 이야기일 뿐이다.
더군다나 폭탄주를 무분별하게 마시고 고성방가를 하거나 노숙자가 되거나 홧김에 추태를 부려 경찰 신세를 지는 진풍경을 여기서는 볼 수 없어서 좋다.
하늘에 별 따기로 모시고 온 인기 개그맨이나 사회자의 말솜씨와 재치에 따라 최면이 걸린 듯 웃음바다가 파도를 친다. 어차피 웃기로 작정한 날이다. 알고 보면 온갖 게임과 서투른 연기를 하면서 가장 많은 폭소를 터트리는 날이다.
웃음은 병균을 막는 항체인 인터페론 감마의 분비를 증가시켜 바이러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워주고 세포 조직의 증식에 도움을 준다는데 구태여 안 웃을 이유도 없다.
친구들의 넋두리도 들어야 하고 그들의 얼굴에서 나의 세월도 읽어야 한다. 야릇한 퀴즈 공부도 하고 춤도 추고 팔자에 없는 경품권도 산다. 그리고 밤늦게 예쁜 포장지에 싸인 선물 하나라도 들고 나오면 그만 한해도 저물고 만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웃음만큼이나 오히려 더 허전한 생각이 든다. 손에 든 선물은 있는데 왠지 가슴에 찬 흐뭇한 선물은 없다.
천편일률적인 무차별 폭소 대작전으로 승부를 거는 사회 진행자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송년회는 그래도 송구영신이라는 벅찬 주제를 내걸고 만나는 밤이다. 우리 가슴에 닿는 진한 감동도 함께 하고 싶다. 눈물겹도록 찡한 사연을 함께 나누고 싶다.
새해의 멋진 설계도 서로 주고받고 싶다. 흉금을 열고 진솔한 대화를 하고 싶다. 한해의 명상도, 감사도, 염원도, 사랑도, 추억도, 꿈도 모두 까르르 가랑잎 소리에 파묻혀 버리는 듯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그 밤이 주는 또 다른 진정한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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