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적으로 100만대 이상이 팔린 진공소제기 ‘룸바’, 스누즈 버튼을 누르면 도망가 버리는 얼람 클락 ‘크라키’등 로봇이 유용한 일상생활용품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요즘이다. ‘로보모워 RL 1000’ 역시 누가 감독하지 않아도 열심히 잔디를 깎아 주는 로봇. 가격이 1,800달러나 되지만 지루한 마당일과 이별하고 싶은 주택소유주들에게는 그리 비싼 것이 아니라고 제조사는장담하고 있다.

깎으려는 잔디 울타리 친 후
스위치 켜면 스스로 ‘작업’
소음 적어 밤에 작동도 가능
경사 15도 넘지 않으면 돼

RL-1000은 1990년대초 전직 이스라엘 F-16 전투기 조종사 2명이 창립한 회사 ‘프렌들리 로보틱스’가 개발한 잔디깎기 로봇중 최신형이다. 두명중 한명은 평생 로봇에 관심이 있었던 엔지니어고 다른 하나는 자본을 끌어 모으는 기술이 출중한 사업가인 회사로, 1994년에 처음으로 로보모워를 팔기 시작해 현재는 20여개국에서 이 기계를 판매중이다.
이 로봇을 사용하려면 우선 이 로봇이 동네 잔디를 모두 깎으러 다니지 않도록 얇은 철사줄로 울타리를 쳐 줘 로봇의 근무지부터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스위치를 켜면 로보모워가 철사줄에서 나오는 신호를 읽고 마당의 경계선을 정한 다음에 삼각형 패턴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경계선 표시 철사줄이나 나무에 부딪치면 방향을 틀어 가며 자기 근무 구역내의 잔디가 모두 깎일 때까지 돌아 다닌다.
그 움직임이 기본적으로 무작위이므로 사람이 하는 것보다 2~3배의 시간을 들이며 깎아도 그 솜씨는 정원사가 한 것처럼 매끄럽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 시간에 집주인은 땡볕 아래 서성이지 않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으니 무슨 상관인가?
RL1000은 직전 모델인 RL 850에 미리 조작해 놓을 수 있는 타이머를 추가해 훨씬 좋아졌다. 즉 매주 수요일 하오 2시에 잔디를 깎도록 프로그램을 해놓으면 그 시간까지 다킹 스테이션에서 배터리를 충전하고 있다가 스르르 나가서 잔디를 깎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배터리가 떨어지면 다시 스테이션으로 돌아와서 충전을 하고 임무를 완수한다.
무게가 80파운드가 넘기 때문에 쉽게 도둑맞을 염려가 적긴 하지만 4자리로 된 암호를 쳐 넣어야 스위치가 켜지는 기능도 있다. 또 소음은 회전식 스프링클러 정도만 발생하므로 밤에 작동시켜도 이웃집을 방해할 염려가 별로 없다. 칼날의 길이도 조정할 수 있고, 경사면에서도 15도가 넘지 않으면 뒤집어지지 않고 제 할일을 한다.
미국내 판매는 거의 모두 인터넷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로보모워를 사는 사람들은 연간 5~8만달러를 버는 남성들이다. 뭐든 새로운 것이 나오면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테크놀로지 벌레, 잔디깎기를 싫어하는 사람, 전에는 자기가 깎았는데 나이나 건강 때문에 더이상은 할 수 없게 된 사람 순으로 많이 사간다.
로보모워의 북미주지역 배급사인 ‘시스템스 트레이딩’의 에임스 티드먼에 따르면 장차 나올 로보모워 모델에는 GPS가 장착돼 로봇이 공간을 파악해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할 예정이다. 아울러 보슬비 정도는 상관이 없지만 빗방울이 떨어지면 로봇이 다킹 스테이션으로 돌아가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리도록 센서도 장착할 예정이다.
혼자 잔디를 깎고, 그것도 정해진 시간을 지켜서, 배터리가 떨어지면 다시 충전까지 시켜가며 임무를 완수하는 똑똑한 로봇도 아직 비를 피하는 센스는 갖추지 못한 모양이다.

<김은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