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참병의 ‘언어폭력’이 있었다고 해서 잠자는 동료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기를 난사하여 많은 동료들과 상급자들을 죽인 사건이 한국의 최전방 군 막사에서 일어났다. 사건 발생에서부터 대응과 보고, 의료조처, 조사에 이르기까지 문제 투성이이자 의문덩이인 사건이다.
흔히 이렇게 질서문란과 기강해이의 사회를 표현하자면 ‘개판’이라고 하지만 개에게도 질서는 있다. 개 조련사에게 들은 이야긴데 물 먹이는 시간이 되면 아무도 정해주지 않았지만 개들에게도 물 마시는 순서가 있다 한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아닌 강약유서(强弱有序)의 순서가 있어서 그 차례대로 물을 마신다고 한다. 힘이 제일 센 개가 먼저 마시고 그리고는 그 힘의 순서대로 차례를 지킨다고 한다.
동물세계의 강약유서를 인간세계로 인간다운 순서로 옮긴 것이 바로 장유유서라 할 수 있다. 강자는 언제나 강자이고 약자는 죽을 때까지 약자로 남을 수 있는 불평등과 불공정이 장유유서에서는 해결된다.
젊은 사람도 꼭 늙게 마련이다. 젊은 시절에는 연배가 높은 어른께 양보하고 그들을 공경하다가 자신이 늙으면 그 공경을 받아가며 사는 질서의 조화가 장유유서에는 있다. 이런 질서 중의 일부가 바로 ‘서열’과 ‘고참’ 등의 형태로 남아있는데, 수년 전부터 시작한 질서파괴, 서열파괴, 권위파괴, 호주폐지 등의 국가 사회 가정 질서의 근간을 흔들어댄 결과가 서서히 나타나는 것 같다.
듣기에는 범행동기에 수사의 초점을 모으고 있다고 하는데 이런 범행, 즉 살인을 하기 위해 한 살인의 경우에는 동기보다 사고의 원인에 더 초점을 모아야 할 가치가 있다.
첫째의 원인은 한 개인(범죄자)의 마음속에 들어 앉아있는 ‘악’이다. 그러나 이런 ‘악’한 요소가 최전방의 막사에서 어처구니없이 표출될 수 있는 이면에는 군의 기강해이를 간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젊은 사병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함으로 군기보다는 개인의 다양성에 맞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며 군 기강 해이를 억지 부인하는 군 당국자의 반응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군대란 유사 이래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집단주의이며 계급조직이다. 여기에 무슨 ‘개인주의의 다양성’이란 말이 타당이라도 한 것인가. 국가를 위해서 전우와 동고동락하며, 끝내는 함께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정신자세를 갖고 사는 것이 군인이다.
군대는 이 목표를 위해서 사는 집단주의 조직이다. 개인주의자가 들어와서도 군 복무기간 만은 집단을 개인보다 앞세우는 집단주의자가 되도록 교육시키고 군의 기강을 잡아가야 한다. 특히 최전방에서 적을 눈앞에 둔 병사들에게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온 국민을 향한 TV 대담에서도 개인 모독을 서슴지 않는 대통령과 말실수를 남발하는 총리가 권력의 정상에 있다. 군 최고 통수권자의 ‘언어기강’이 이렇게 해이해 졌는데, 한낱 고참병의 ‘언어폭력’엔 왜 그리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가?
내성적인 성격자가 한둘이 아니고 또 군에 입영하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런 것들이 동료와 상급자에게 행하는 수류탄 투척과 총기난사의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악’과 군기문란 이외는 찾을 원인은 없다.
‘대통령 해먹기도 힘든’ 세상에서 ‘졸병’ 해먹기야 오죽 힘들 것인가? 국민 해 먹기는 얼마나 더 힘들 것인가? 하기는 해외동포 해먹기도 힘들어진다.
그러나 이런 힘든 시대를 이겨가며 새로운 에너지를 축적한 것이 바로 한민족의 힘인 것도 잊지 말자. 젊은 생을 마친 고인들의 명복을 빌며 함께 배워야 할 교훈은 인권, 민주화 등등의 명목으로 파괴된 권위와 질서를 되찾지 않으면 역사는 반복된다는 점이다.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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