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를 데리고 보나 나은 나라에서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미국 행 비행기를 탄 것이 20여년 전 일이다.
그동안 정말로 보다 나은 삶을 살아왔는지는 차치하고 지금 한국에 가면 십중팔구‘미국 촌놈’이 왔다는 말을 들을게 뻔하다.
머리나 옷 스타일 등 외모는 그렇다 치더라도 들고 온 셀룰러 폰도 후진 데다 한국 집집 화장실마다 유행이라는‘비데’를 어떻게 쓰는 줄도 모른다. 한국에서 온 여행객들이 줄줄 읊는‘브랜드 네임’중 알아들을 만한 이름이 거의 없다. 세간 말로‘쪽팔릴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더 잘 살아보려고 미국 땅을 찾은 지 20여년 만에 이제는 미국 땅에 사는 이민자들보다 오히려 모국인들이 세상 돌아가는 것에 더 빠른 것 같다.
한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아름다운 재단’의 창설자인 박원순 변호사가 지난주 시애틀을 다녀갔다. 미국사회의 기부 시스템과 ‘굳윌’같은 중고품 판매장을 통한 기금 확보 방식을 한국에 도입시킨 장본인이다.
박 변호사가 아름다운 재단 운영방식을 미국 내 한인사회에 역수입하고 싶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미국은 선진국, 한국은 중진국, 미국 속의 한인 사회는 후진국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좋은 미국식 시스템을 한인사회에 직접 접목시킬 수 있는 것들이 많은데도 주류사회와의 접촉부족으로 으레 한국을 거쳐서 거꾸로 도입하고 있는 현실이 한심하다.
한국에서 온 필자 또래의 여행객들은 흔히“서울이 얼마나 변한 지 아세요? 이민 온 분들은 이민 올 때 당시 상황만 생각하기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서울에선 무선 인터넷이 일반화 돼 가는데 시애틀엔 고속 인터넷 케이블조차 구비되지 않은 호텔이 수두룩하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시애틀은 자연환경마저 촌스럽다. 동네마다 숲이 우거져 있다. 연중 눈 덮인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고 크고 작은 호수들이 널려 있다. 아직도 밤하늘에 별이 뜨는 곳이다.
이런 환경에서 사는 우리는 촌놈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박한 환경의 모국인들과 비교하면 우리는 여유 있는 촌놈이며 알맹이 있는 촌놈이다.
지나온 세월 동안 역시 보다 나은 삶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김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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