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웠던 여름이 물러나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서늘하고도 투명한 대기, 석양 노을에 붉게 물들었던 구름들이 잿빛으로 변해버리고 희미하던 긴 그림자마저 사라진 어둑어둑한 초가을에 바닷가 언덕 한 모퉁이에 서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다가오는 파도를 바라보면서 내 삶이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보도록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주는 그 소박한 풍경을 사랑한다. 그럴 때마다 후회와 아쉬움, 그리고 기쁘고 즐거웠던 지난 내 생의 순간 순간들이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신혼 때의 일이다. 살던 아파트가 직장과 두 블럭 밖에 되지 않아 점심은 항상 집에 가서 먹고 잠시 낮잠도 즐기던 어느 날 점심때 집에 가니 어떤 낯선 사람이 소파에서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나는 긴장을 했고 부엌에서 나오는 아내에게 누구냐고 물었다.
그날 아침 아내는 LA 국제공항에 갈 일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기운도 없이 축 늘어진 사람이 한국사람인 것을 알았고 이야기를 해보니 국제 선원이며 아파서 귀국을 해야 됐는데 갈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돈도 없고 영어도 할 수가 없어 몇끼를 굶었단다. 또 비행기 시간이 10시간 이상 남은 저녁이라 너무 안됐기에 집으로 데려와 점심을 먹였더니 소파에 앉아 TV를 보다가 잠이 들었고 밤에는 또 공항에 데려다 주어야 한단다.
아내의 대답과 행동에서 진한 감동을 받고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나를 얼마나 믿었으면 겁도 없이 생판 알지도 못하는 남자를 데려다 밥을 먹이고 재울 수가 있었으며 또 굶주릴 때 먹여준 그 작은 선행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되자 내 아내의 또 다른 매력으로 보였다.
성경에 ‘가난한 사람에게 후하게 하여라. 그러면 주님의 충만한 축복을 받으리라. 산사람 모두에게 너그럽게 은덕을 베풀 것이며, 죽은 사람에게까지도 은덕을 베풀어라’(집회서 7장32-33절)는 말씀이 있다.
얼마전 카트리나 허리케인으로 우리가 살고있는 뉴올리언스의 수많은 형제 자매들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살던 집과 비즈니스등 삶의 터전을 잃고 절망 속에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또 세계 각지에서는 기아에 허덕이며 하루에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내 몫의 한 작은 부분을 이웃에게 나눠주어 나와 이웃이 자리를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하다. 돈도 자기 성취도 인생에 있어 귀중한 것이지만 무엇보다 귀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의 본질적인 힘은 어떤 고난에도 힘들지 않게 일으켜 세우고 일어나는 것이며 힘든 그 자체를 껴안는 것이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더 커지는 것, 우리 모두 기쁜 마음으로 작은 희생과 정성을 합쳐 형제의 사랑을 보여줘 그들에게 제기할 수 있는 힘과 용기, 희망을 줄 때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고 말씀하게 하자.
삶의 진정한 모습은 사랑을 향하여 걸어가는 사랑의 본질적 현실에 있는 것, 그로써 생명의 빛남을 체험하고 벅차 오름의 환희와 축복과 살아있음의 감사를 알게 한다.
임 무 성
(성아그네스 성당 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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