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두고 고향집을 떠나는 이의 마음처럼, 한국에서 20년간 쌓아 온 우정과 추억을 두고 온 것만큼이나 아쉽고 허전했고 슬펐다.
3년이라는 시간을 조그만 리커스토어에서 신뢰받고, 사랑받으며 정 나누었는데, 2005년의 마지막 날과 함께 추억이라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방에 두고 떠났기 때문이다.
많이 성장한 것 같다. 12년간의 공교육을 마치고 졸업하는 고등학생 같은 기분이랄까. 과거 한글로 발음 기호를 적어가며 종이가 닳도록 외웠던, 그리고 외쳤던 스패니시의 ‘우노,도스,트레스’는 이제 영어의 ‘원,투,쓰리’ 보다 익숙해졌고, 숫기가 없어서 오는 손님이나 가는 손님 불문하고 봐도 못 본 척, 괜히 말이라도 걸면 어쩌나 걱정했던 내가, 이제는 능청스럽게 오늘 날씨는 어떻다 하며 대화를 유도하고 어쩌다 기분 좋으면 농담까지 건네는 귀찮은 직원이 되었다.
회의도 없지 않았다. 초반에는 시간당 급여를 받고 일하는 것 때문에, 30분이라도 적게 자고 출근해서 일하고 그렇게 급여를 늘려 가는 것이 기뻤다. 일이 쉬운 듯 느껴졌다. 그냥 한 시간만 채우면 시간당 급여가 채워지는 식의 일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차츰 그것이 나의 시간과 돈을 바꾸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내가 돈과 바꾼 주말과 주중의 시간들이 안타까웠다. 돈 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만들 수 있었던 시간이었는데... 또한 잠 덜 자고 30분 일찍 출근해서 버는 돈이 30분간의 달콤한 잠만큼 달콤하지 못하고, 더 큰 피로를 축적하는 길이었음을 몰랐었다.
진심으로 감동하는 것 한 가지가 있다. 나를 3년간 성장시킨 사장님 부부의 칭찬.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서 고래는 조련사의 칭찬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더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 조련사의 훌륭한 훈련방법이 바로 ‘칭찬하기’ 였는데, 고래의 긍정적인 면을 칭찬해 주며 계속적으로 칭찬 받는 행동을 하도록 만드는 훈련방법이었다. 이것을 인관 관계에 접목시킬 때는 분명 ‘신뢰와 사랑’ 이라는 단어가 배경으로 자리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특히 주인과 종업원의 관계에서 신뢰나 사랑이 빠진다면, 주인은 종업원에 대해 무관심하고, 직원은 무성의하고 비능률적으로 일하게 되면서 사업체가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나는 조련사의 고래는 아니었지만 사장님의 신뢰와 사모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자라나는 나무였다. 칭찬을 들으면 자라는 나무. 나는 칭찬에 의해서 ‘일하는 즐거움’의 새로운 ‘가지’를 얻었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새싹도 피우게 되었다.
이제 24살, 누군가 추억은 돌아 올 수 없기에 아름답다고 했던가.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미국에서 살 시간이 더 많을테지만, 이제까지 만난 사람 보다 앞으로 만날 사람들이 더 많을테지만, 나의 이민 시작과 함께 했던 리커스토어에서의 추억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지원근 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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