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이것 좀 봐.”
감동이 가득 찬 얼굴로 남편이 나에게 가져 왔다. 부엌 청소 하다가 고구마의 순을 발견한 것이다. 어쩌면…! 둘 다 할 말을 잃고 고구마를 바라보며 각자의 생각에 잠겼다.
아주 조그만, 내 새끼손가락 손톱 보다 더 작은 녹색 잎이 똑 같이 가냘픈 가지 끝에서 꽃처럼 피어 있었다. 짙은 자주 빛 줄을 친 연한 잎은 마치 신생아실에서 금방 나온 갓난아기의 실핏줄을 보는 듯하였다. 경이로웠다. 새 생명이었다.
아무렇게나 대바구니에 담아 부엌 한 쪽 어둔 곳에 겨울 동안 무심히 두었던 고구마였다. 봄이라고… 이것도 생명을 가졌다고… 나의 가슴이 조용히 뛰었다.
문득 지난 작문반의 Ruth의 시가 생각났다. 시 마지막에 그녀는 “old paths peter out, making room for the new.”라고 썼다. 그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내가 느낀 것을 발표할 때, 맞은편에 앉아 나를 바라보는 중년이 지난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내 인생의 반이 꿈결같이 지났다. 아이들은 어느새 자라 각자의 길로 힘차게 떠났다. 나는 남편과 함께 두 아들에게 건강함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따뜻한 가슴과, 또 자신과 사회에 대하여 정직하고 바른 마음을 지닌 젊은이로 자라도록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사랑과 보조를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 갔다.
우리 부부는 한 해씩 더 나이가 들 것이고, 언젠가는 메마르고 기운 없는 늙은이가 될 것이다. 새 순을 세상에 내 보낸 저 마른 고구마 같이.
안간힘을 다해 어둠 속에 숨어서 새 순을 내 보낸 고구마가 장하게 보였다. 어린 생명이 하나씩 온 힘을 다해 고구마의 몸을 밀고 나올 때마다, 고구마는 조금씩 속으로 마르고 있었으리라. 저렇게 사랑스러운 어린 잎을 세상에 내 보내기 위하여. 그리고 아무런 미련 없이 껍질만 남기리라.
인생의 마지막에 나는 행복한 엄마로 눈을 감을 것이다. 아들들이 나에게 준 셀 수 없이 많은 기쁨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서. 마치 무엇을 잡을 듯이 세상을 향해 가지를 뻗어 나가는 고구마의 어린 순을 바라보며, 삶의 한 가지 변함없는 진실을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희생이다. 어떠한 목표를 두고 그 누군가가 스스로 희생할 때 일어났던 역사상의 크고 작은 변화를 우리는 늘 경이로운 마음으로 지켜보지 않았던가. 아, 나는 이 사순절에 희생과 새 생명을 보았다. 기쁘다.
한현숙/워싱턴 여류수필가협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