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CEO 스티브 잡스(51, 사진)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Icon)으로 불려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인생사는 부침을 거듭해온 애플의 역사만큼이나 평탄치 않았다.
195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출생한 스티브 잡스는 태어나자마자 친부모로부터 버려져 폴과 클래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됐으며, 17세에 오리건주 리드대학에 입학했으나 학비가 없어 3학기 만에 중퇴를 결정하기에 이른다. 후에 스티브 잡스는 “나는 가난 때문에 대학을 자퇴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생애 최고의 결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20세 되던 해 그는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쿠퍼티노에서 ‘애플’을 시작했다.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불과 10년 후 4천여명의 종업원과 함께 20억 달러 가치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지만 스티브 잡스는 경영 일선에서 밀려나는 시련을 맞게 된다.
그러나 그는 다시 아이맥(iMac)의 출시와 더불어 애플컴퓨터의 CEO로 복귀, 음악시장을 평정한 아이팟(iPod)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그만의 아이디어로 연이은 히트작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는 2004년 8월 췌장암에 걸려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 또 한번의 시련을 맞게 되지만 2005년 6월 췌장암을 극복한 모습으로 스탠포드대학 졸업식장에 나타나 “매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한다. 헝그리 정신을 가지고 미련할 정도로 자기 길을 가라”는 내용의 유명한 축사를 남기며 다시금 부활하기에 이른다.
지난 2000년 그가 샌프란시스코 모스코 컨벤션센터에서 애플의 ‘임시 CEO’ 직함을 떼고 정식 CEO로 돌아왔음을 선포했을 당시, 무대에는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Imagine)’이 흘러나왔었다고 한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나를 보고 몽상가라 비웃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만 그런 건 아니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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