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 실패 아버지‘자폭 심리’로 극단적 선택
한인가정이 잇따라 참변을 겪고 있다. 그것도 다름 아닌 가족에 의해 사건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사실에 한인사회가 받고 있는 충격파는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 특히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의 최대 희생자가 어린 자녀들이란 점은 보는 이로 하여금 분노와 함께 더 이상 한인사회의 잠재돼 있는 모순을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를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김상목·이석호 기자>
심리적 박탈감 한인 남성 전문기관서 도움 받아야
“아버지가 저지르는 극단적 선택은 이민 사회에 적응하지 못 하는 ‘아버지의 방황’에서 비롯됩니다.”
아태정신상담센터(APCTC)의 권호선 한인 가정상담 수퍼바이저는 한국식 가부장제에 익숙한 한인 남성들이 이민 사회 적응 실패로 잘못된 결정을 일삼고 있다고 정신적으로 병든 한인 사회를 진단했다.
권 수퍼바이저는 최근 발생한 극단적 가족 살해 사건에 대해 “한국식 고정관념을 지닌 남성이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저지른 비극”이라고 밝혔다.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힌 한인 남성이 개인의 실패를 가족의 실패로 오인, 동반 자살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수퍼바이저는 한인 남성의 이민 사회 부적응에 대해 “한국과 같은 수준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할 수 없는 남성들이 자존감을 상실하고 여성도 일을 해야하는 이민사회에서 가정의 주도권을 빼앗긴다는 심리적 박탈감을 겪는다”고 밝혔다. 또한 한인 남성들의 사회적 네트워킹의 부족, 언어 장벽 등도 심리적 고립감을 유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 수퍼바이저는 정신적 갈등과 우울증 등을 겪는 한인은 전문 기관을 통한 상담 치료를 받아야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인들이 상담 치료를 부끄러워한다”며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전문 기관을 통한 도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권 호 선 <아태정신상담센터 수퍼바이저>
아내 때리는 남편 초기에 안잡으면 나중에 폭발
“가정 폭력을 호소하는 한인 여성들의 상담 사례 중 3분의 1은 자녀 학대를 동반하고 있습니다.”
한인 대상 무료 법률상담을 진행하는 LA법률보조재단의 조앤 이 변호사는 부부 갈등을 넘어 자식을 볼모로 한 한인 가정 범죄에 대해 “놀랄 일은 아니다”라고 밝혀 한인 가정 불화의 심각성이 일반인의 예상을 넘어서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 변호사는 부부 갈등의 희생양으로 자식들이 등장하는 데 대해 “가해자인 남성이 피해자인 부인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으로 자식들을 악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이 같은 행동양식은 가해자인 남성은 자식을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극단으로 치닫는 한인 가정 폭력에 대해 “한인 여성들은 자식을 생각해 ‘웬만하면 참고 넘어가자’는 식으로 구타 등 남성의 일상적 폭력에 대해 참고 넘긴다”며 “폭력적 성향이 보이는 초기 단계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그동안 쌓인 폭력적 성향이 한꺼번에 폭발할 수 있다”고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의 주의를 당부했다.
이 변호사는 가장 중요한 것은 가정의 유지보다 자식과 피해 여성의 안전문제라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각 가정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른 대응을 해야한다”고 전제하면서도 “‘죽이겠다’는 언어 폭력이 발생할 때 경찰에 신고를 하는 등 조치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LA법률보조재단 가정폭력 한국어 핫라인 (323)801-7987
조앤 이
무기력감·분노 쌓일 때 친구·친척 도움이 중요
“주위 친척과 친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신과 전문의인 조만철 박사는 한인 가정의 문제를 폭발 일보 직전상황이라고 진단하고 무엇보다도 주변 친지들의 도움과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 박사는 “힘겨운 이민생활에서 가족 등 지인들로부터 위로와 보상을 받지 못할 때 무기력감과 분노가 쌓이게 된다”며 “경제적인 어려움에 더해 사회적으로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게 될때 많은 이민자들은 자폭심리를 겪을 수 있다”며 “패배감이 짙어질 때 배우자와 자녀 등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을 부숴 버리려는 ‘자폭심리’가 작동할 때 끔찍한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진단했다.
많은 한인이민 1세들은 주류사회 미국인들과 비교해 자신을 2등 주민이라는 패배감에 젖어 있는 것 같다고 우려한 조 박사는 “소소한 일상에서 작은 행복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패배감과 무기력감, 분노로 힘들어 하는 이민1세들은 자신의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려는 독불장군식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 박사는 이민1세들의 건전하지 못한 자존심이 반발심리로 발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며 일시적인 실패와 좌절을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해선 안된다고 조언했다.
조박사는 “자녀까지 살해하는 비극을 저지른 한인 가장들의 공통점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라면서 “자신이 성공하지 못한 고통스러운 세상에 자녀를 남겨두지 않겠다는 식의 뒤틀린 사고방식이 무의식적으로 잠재해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만 철 <정신과 전문의>
가정내 감정 문제 방치말고 정신 상담으로 해결을
“교회마저도 힘들고 어려운 사람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장수경 임상심리학 박사(윌튼 클리닉)는 잇따른 한인가정들의 참극의 배경에는 ‘이민생활의 좌절’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좌절감으로 인해 일상적인 우울과 분노 속에 생활하는 이들에게 이제 커뮤니티가 나서 적극적인 도움의 손길을 뻗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장 박사는 “대가족 문화 속에서 자라온 1세들은 감정표현에 서툴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 발생하는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능력도 부족한 경우가 많다”며 “이민생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는 교회마저 가정불화를 겪는 한인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거나 오히려 이들을 기피하는 실정”이라고 탄식했다.
임상에서 많은 1세들을 상담해 온 장 박사는 “인간관계의 경계와 책임이 분명치 않는 대부분의 1세들은 ‘전부’ 아니면 ‘전무’ 식의 흑백 논리적 사고를 하고 있다”며 “1세 부모들의 자녀에 대한 뒤틀린 권위의식과 책임감이 이같은 참극을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장 박사는 “일상에 일어나는 가정내 사소한 감정 문제를 방치하면 극단적인 비극이 될 수 있다”며 “이들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 위해 주위 사람들이 먼저 도움을 줘야하며 커뮤니티도 이들을 위한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상담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장 수 경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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