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끝난 일이지만 나도 한마디하고 싶다.
그날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아 한국 스위스 대전을 모니터 하면서 리포트를 쓰고 있었다. 빨간 셔츠를 입고 ‘대~한민국’을 외칠 수는 없는 형편이었지만 가슴의 박동이 불규칙하고 도무지 하는 일에 마음이 집중되지 않았다. 두 시간이 그렇게도 길고 또 그렇게 짧을 수가 없었다. 좌절에 대비한 두려움과 영광에 빛나는 승리의 꿈을 즐기면서 초조하게 보낸 시간이었다. 그런데 꿈은 깨어지고 게임은 끝났다. 월드컵은 계속 되고 있지만 우리의 게임은 끝났고 뜨겁던 가슴은 열기를 잃 었다.
스위스는 처음부터 두려운 팀이었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조직 안에서 시작했고 선수들이 모두 젊은 클럽 사커 출신들이다. 특별히 꼽을 국제적 명성의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대신 모든 플레이어들이 다 스타이기도 한 팀. 그리고 스위스 사람들은 모질고 독한 것이 국민성의 특징이다.
레만 호수의 서정이나 융프라우의 고고함을 그들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지독한 승부 근성에 한번 물고 늘어지면 절대로 놓지 않는 끈질김과 두뇌의 명석함도 그들의 국민성이다. 그 작은 나라가 세 강국들 사이에 끼어 먹히지 않고 오히려 호황을 누리면서 세계대전을 비켜간 실력의 주인들이다. 로마 교황청이 대대로 스위스 출신 호위병을 고용하는 것도 우연한 사실이 아니다.
예상 했던 대로 그들은 강적이었고 우리에게는 운도 따라 주지 않았다. 게임이란 그럴 수도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약간 허탈한 기분으로 우리는 일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러나, 그래도, 아쉽고 또 아쉽다.
스위스 팀에 비해 우리 선수들에게는 독종 기질이 결여되어 있었다. 월드컵 같은 큰 게임에서는 실력과 열성은 기본이고 더 중요한 요소는 죽어도 놓칠 수 없다는 오기, 광기, 그리고 킬러 본능이라고 믿는다. 한국 팀은 훌륭한 감독과 코칭 스텝을 갖고 있지만 스포츠 심리학자의 도움을 받는지 나는 모른다.
선수들의 의식, 무의식 깊숙한 곳에 심리적으로 필요한 요소들을 심어 줄 전문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정직하게 말해서 필드를 누빈 우리 선수들보다는 필드 밖에서 응원한 팬들이 더 높은 스코어를 받아 마땅했다.
우리가 축구라고 부르는 사커를 응원하면서 나는 십년이 넘는 젊은 세월을 보냈다. 세 아이의 사커 게임을 따라다니면서 남편은 심판과 코치하느라 바빴고, 나는 그들의 뒷바라지와 응원에 열정을 마친 사커맘이었다. 나는 아직도 사커의 열렬한 팬이다. 늦은 밤 유럽 리그 매치를 TV로 보느라 잠을 설치기도 한다.
아무 상관없는 팀이 경기를 해도 어느 한편을 응원하다 보면 소리를 지르게 되고 몸이 더워지는데, 하물며 대~한민국의 게임인 데야.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확률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이변을, 게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그런 해프닝을 나는 소원하고 있었다. 우리 선수들 모두가 달리는 기적이라는 것을 증명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붉은 물결을 이루고 있는 팬들의 열광에 더 강한 불을 지펴 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주문인지 그런 판단은 생각에도 없었다. 이것이 내가 일터에서 참여한 조용한 응원이었다.
세계인을 위한 이 축제에서 아직도 살아남은 승자들은 남미의 한 나라를 빼고는 유럽 천지다. 아시아의 희망이었던 대~한민국이 퇴장한 후 우리에게 경기장은 썰렁한 느낌이다.
4년 후 아프리카에서는 참으로 더 멋진 게임을 기대해 보면서 나는 지금도 남은 팀들의 경기를 5분에 한 번씩 체크하면서 이 글을 쓴다.
송정원 베벌리힐스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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