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공연에 야외음악당 할리웃보울이 꽉 차는 날은 흔치 않다. 하지만 이 교향악이 연주되는 날은 다르다. 1만 7,000 석이 거의 다 찬 7월 중순, 조국에서 온 문예계 인사 부부와 자리한 우리도 포도주가 곁들인 식사를 했다. 만장한 관객을 꿈의 고향으로 이끌고 갈 드보르작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의 밤이다.
지휘봉의 놀림에 혼(Horn)이 장중한 주제를 우아하게 연주하자 상큼한 플루트와 빼꼼한 오보의 선율이 따른다.
현악기들이 주제를 받아 되풀이 하면 투명한 금관악기들이 이에 응하면서 뇌성 같은 드럼 소리와 함께 제 1악장의 기차가 상쾌하게 출발했다. 작곡자가 좋아했다는 그 옛날 기차처럼 아메리카 평원을 이리저리 휘젓듯 달려간다.
체코 출신의 드보르작은 1892년 뉴욕의 아메리카 음악원장으로 초빙되어 3년을 이 대륙에 머물렀다. 낯선 뉴욕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그는 휴가 때면 체코 이주민이 모여 사는 아이오와 주의 스필빌을 찾곤 했다. 이 땅에서 인디안 민속선율과 흑인영가에 깊은 인상을 받은 그는 이것이 미국 음악의 모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신세계의 음률에 보헤미아의 정서를 담아 51세에 이 곡을 썼다.
관악기의 장중한 화성이 천천히 울리자 달리던 기차가 멈췄는가? 현악기들의 여린 반주 속에 저 평원 어디에서 들려오는 듯한 감미롭고 정감 어린 멜로디, 제 2악장의 주제가 흐르기 시작했다. 코르 앙글레(Cor Anglais)의 부드럽고 쓸쓸하게 호소하는 듯한 가락이 가슴을 감싸 안는다. 고국을 떠난 여러 나라 사람들이 LA에 살고 있다. 그들의 언어와 민족은 달라도 향수라는 인간 내면의 진솔한 감성을 파헤쳤기에 너나 없이 순수의 세계로 빠져들고 있는가 보다.
젊은 시절, 조국에서 듣던 때도 늘 아련함을 느끼게 하던 이 라르고를, 고향을 떠나 멀리 온 이곳, 작곡의 현장에서 듣는 감흥이 늘 새롭다.
하이마트로제의 고독감이 짙게 녹아 든 이 주제곡은 고국에서는‘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으로 불려지는 노래,“귀향(Goin’Home)”이다.
해학적인 3 악장은 인디안 선율이 섞여 있음인지 마치 한국 민요처럼 신나는 가락이다. 플루트와 오보의 선도로 나오는 주제는‘닐리리야…… ‘로 시작되는 민요와도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느낌을 준다고도 한다. 인디안의 조상이 우리와 같은 몽골인이어서인가? 뒤이어 따르는 가라앉은 멜로디는 다시 애틋하지만 그리움은 이제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아깝게 흘러간 주제 선율들을 벌써 그리워하고 있는 것을 알았음인지 마지막 악장에서는 전 악장들에서 나왔던 주제들이 다시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가녀린 음률이 아니고 트럼펫과 혼 등에 의해 생동감 넘치게 달린다. 그리고 폭 넓은 클라리넷의 맑은 음색이 현악합주 위에 서정적으로 울리면 다시 격렬한 춤곡으로 발전한 뒤, 광활한 신세계 평원을 힘차게 달려간 기차가 종착역에 멈췄다.
100년 전, 안토닌 드보르작은 이‘신세계로부터’를 고향 체코로 띄어 보냈다. 나는 오늘 여기, 아메리카에서 고국의 친구에게 보낸다, 교향악‘신세계로부터’를.
오인동
정형외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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