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족인 윤희주씨가 셀폰 대신 손수첩에 전화번호를 손수 적어 내려가고 있다.
“이메일은 답답” 메신저 사용과 달리
삐삐 차는 의사·셀폰 대신 수첩에 메모
CD 대신 LP 고집 “느림의 미학 좋아요”
셀폰의 메모리 카드를 교체하란 연락을 받은 윤희주씨. 윤씨는 계속되는 셀폰회사의 연락에 가게를 찾았지만 메모리 카드를 교체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전화번호가 저장되어야 할 메모리카드가 텅텅 비어있었기 때문이다. 조그만 손수첩을 들고 다니는 윤씨는 다름아닌 아날로그족.
빠름의 효율성에 밀려나 있던 아날로그족들이 기지개를 펴고 있다. 초침 단위로 빠르게 흘러가는 디지털 시대에 이들은 “느리게, 느리게. 우리는 느림의 미학을 추구한다”며 여유만만이다.
디지털 입력대신 수필로 연락처를 수첩에 기입하는 윤씨는 “전화번호를 손으로 직접 써 내려갈 때 그 사람에 대한 기억과 전화번호 암기도 더 또렷해진다”며 “불과 10초면 되는 일이 뭐가 힘들겠느냐”고 말했다.
의사인 크리스티 김씨는 ‘무셀폰족’. 직업 특성상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삐삐를 옆구리에 차고 다니는 의사들이지만 셀폰이 없는 의사는 드물다. 김씨는 “응급 상황은 삐삐면 족하다”며 “일상적인 스케쥴이 명확한 상태에서 불필요한 일상의 침입자로부터 사생활을 지키고 싶다”고 전화로부터 자유를 선언했다.
이 같은 아날로그족의 등장은 이메일로도 만족하지 못 하는 ‘초디지털족’과 큰 대조를 이룬다. 대학생인 김모(19)양은 “노트북으로 숙제할 때면 항상 메신저를 켜 놓는다”며 “언제 답장받을 지 기약없는 이메일보다 메신저를 통해 즉각 자료를 받고 보낸다”며 디지털의 진보를 바로바로 업데이트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아날로그족과 초디지털족의 양극화는 피할 수 없는 사회현상이라고 진단한다. 기술의 진보가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지배하지만 이를 거부하려는 이들의 반작용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장수경 박사는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빠를수록 이를 따로 잡지 못 하는 사람들은 생활의 주도권을 신기술에 빼앗긴다는 박탈감을 느끼기 마련”이라며 “이 때문에 익숙한 것, 실수를 범할 가능성이 적은 생활패턴을 고수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디지털에 점령당한 일반인들의 모습에서 아날로그는 새로운 멋쟁이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음악을 좀 안다는 사람들은 CD의 열풍에도 불구하고 LP의 맛을 잊지 못 해 LP를 고집하는가 하면, 손수 시계밥을 줘야 하는 ‘손품’을 팔아야하는 고시계는 일반인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다.
사람의 체취가 사라지는 디지털 시대의 틈새를 파고드는 비즈니스계의 전략도 치밀하다. 고급백화점인 노드스트롬(Nordstrom)은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한 고객에게 역설적이게도 펜으로 직접 ‘고맙다’는 내용의 감사장을 써서 발송,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감성 마케팅 전략을 펴고 있다.
<이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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