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세계에는 700여만 한인들이 175여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다. 그들이 하나됨을 기념하는 날이 ‘해외 한인의 날’ 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은 1월 13일이 돼야 한다. 국가적 결정에 의하여 이주 한인사회가 형성된 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독립된 실체로 자국의 국민을 해외로 이주 시킨 날이 1903년 1월 13일이다. 1903년 대한 제국 정부와 미국은 국제간의 이민조약을 기초로 이민을 단행했다.
한편 중국의 조선족 · 일본의 재일동포 · 러시아의 고려족 등 타국에도 이주 한인사회가 형성되었으나 국가와 국가 사이의 조약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이는 천이 · 유민 등의 이름으로 타율적 · 강제적이었다.
그러나 미주 지역의 이주는 주체적으로 수행된 것이다. 해외 한인의 이주사회 형성을 기념하고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을 역사의 실체로서 인정한다면 이주의 기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자가 1903년 1월 13일인 것이다. 이것은 미주 한인이민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공식적인 한민족의 해외 이주의 기점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해외한인 이주의 날’ 제정은 지난 100년간의 고난에 찬 해외 한인들의 존재를 기념하는 날이며 앞으로의 100년을 향한 해외 이주한인 사회의 초석을 놓는 날이기도 하다.
지금이야말로 세계 각처에 흩어져있는 한인들을 묶어내는 연대가 나타나야 할 시기다. 남북간의 분단된 상황이 지속되는 현실에서 민족의 평화, 화해를 촉진하는 세력들이 등장하여야 한다. 5대양 6대주 세계 각처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을 단지 단군의 후예라는 핏줄을 근거로 한 연대는 의미가 없다.
우리는 국가의 도움이 없이 지난 100년간 세계 각처에 흩어져 다양한 역사 경험을 바탕으로 인종적, 문화적, 사회적 차별과 갈등을 극복하면서 오늘의 현실을 이룩했다. 일본의 재일동포는 일제의 차별과 억압 속에 굴하지 않고 자신들의 주체적인 사회 형성을 구현했다.
미주지역의 한인 이주민들은 선진조국과 한민족의 세계화를 이루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불구하고 시베리아, 중국 동북지역에까지 건너가 독립운동을 전개하였고 상해 임시정부가 유지될 수 있도록 물질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해방과 함께 건국운동에 참여하였고 또 그 이후에 민주화 운동, 인권운동, 민족의 평화통일 운동에 헌신하여 왔다.
한국 민족의 시조로 받드는 태초의 임금인 단군께서 나라를 세운 날이 10월 3일이다. 어찌 이날이 현대사에서 이루어진 700만 이주 한인들이 해외로 이민을 시작했던 기점의 날로 기념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것은 이민자인 우리가 대한민국 정부에 해외한인의 날을 정해줄 것을 청원하는 것이지 이미 정해져 있는 국경일에다 얹혀서 모국 국민을 포함한 해외한인의 날을 제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한민족의 이주 한인역사는 1903년의 1월 13일이 기점이다. 이미 5만 여명의 서명을 받았으며 10만 명 목표 달성을 위해 계속 서명을 받고 있다. 우리 모두 마음을 합쳐서 서명 운동에 참여하자.
김명균
전 남가주 한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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