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환자 아이반은 뇌성마비 환자다. 날 때부터 정상아가 아니었는데도 내가 아는 한 아이반처럼 부모의 사랑과 관심 속에 자라온 사람도 드물다. 나이가 33세인데도 내 오피스에 올 때는 언제나 양친의 손에 끌려 휠체어를 타고 온다.
그런데 아이반이 휠체어에 실려 내 오피스에 나타나는 날은 오피스가 온통 잔칫날이다. 그는 항상 벙실거리는 얼굴로 누구를 보든 반가워서 알아듣기 힘든 말을 재잘거리며 무작정 포옹하려 들기 때문이다. 일단 그와 허깅 하면 그는 1분이고 2분이고 계속 꼭 껴안고 놓아주질 않는다. 그렇기에 서로 웃고 떠들어대곤 한다.
그날도 아이반을 휠체어 싣고 와서 그의 부모가 잠깐 내 방에 들어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환자 대기실에 남아있던 아이반이 그만 옆에 앉아 있던 환자를 꼭 껴안고 온 얼굴을 가슴에 비벼댄 모양이다.
40대 중반의 그의 얼굴과 가슴 언저리의 옷자락이 온통 아이반이 흘린 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물론 간호사와 아이반의 부모님이 즉시 물수건을 들고 와서 그 남자의 얼굴과 옷자락에 묻은 침을 정성껏 닦아주면서 사죄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남자는 괜찮다고 하면서 웃기만 했다.
조금 후 알고 보니 그 날 내 오피스에 처음 찾아와서 아이반에게 갑작스런 허깅을 당한 그 낯선 남자는 실은 감옥에서 출소한지 얼마 안 된 C형 간염환자였다.
나이 40이 넘도록 마약, 절도 등으로 인생의 뒷골목 길을 방황했던 외로운 인간이었다. 그날 아이반과 그 부모님들이 다 떠난 후 차례가 되어 내 방에 들어온 그 환자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면서 다음같이 울먹거리는 것이었다. “10대로 들어설 무렵부터 부모가 이혼해 홀로 버려진 이후 30년만에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껴안겨 보았다”고 하면서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진정 그날 아이반은 그 남자에게는 꿈속에서 갈구했던 엄마 아빠의 가슴 속이었으며 그가 느껴 보지 못한 하느님의 따뜻한 품속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우리 모두는 누구에겐가 알게 모르게 천사가 된다. 그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존재 의미가 ‘선’으로 드러남을 보게 된다. 쓸모없이 보이는 길거리 홈리스들조차 그가 있기에 누군가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그리하여 그가 없어져버리면 갑자기 맥이 풀려버리는 그런 소중함으로 우리 모두가 존재한다는 사실 말이다.
그렇기에 잘남도 못남도, 늙음도 젊음도, 부자도 빈자도, 나아가 병들어 죽어가는 존재마저도 상관없이 모든 이가 숭고하다는 생각이다.
이 때문에 오늘도 내 주위에서 불치병으로 신음하는 남편과 자식에게 삶의 온 희망을 걸고 기도하며 사는 사람들을 본다. 심지어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혀 있는 자식을 40년이 넘게 매주 찾아가는 노모의 기사도 읽게 된다.
감히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오직 단 하나의 유일한 존재의 의미로서 사는 생명이기에, 우리는 모든 것 안에서 “존재는 선”임을 발견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감히 세상은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김재동>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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