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기자는 냉철한 시각으로 뉴스를 바라보아야 한다. 기자가 감정적으로 뉴스를 다루면 과장되거나 편견에 치우친 기사를 쓰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자도 사람이다. 어떤 뉴스에 대해서는 감동할 때가 있다.
지난주 어느 TV 앵커가 친구에게 자신의 신장을 기증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신장을 기증받은 친구는 자신과 한때 방송국에서 함께 근무하던 동료기자였다. 나를 감동시킨 것은 동료기자가 직장을 떠났는데도 이 TV 앵커가 같이 지내던 우정을 생각하여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선뜻 기증하겠다고 나선 그 마음씨다. 화제의 주인공은 필립 팔머라는 로스앤젤레스 ABC-TV(채널7)의 뉴스 앵커다. 몇 년 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제인 스미스라는 중학교 여교사가 제자에게 신장을 하나 떼 내주어 미국의 학부모들을 감동시킨 적이 있었지만 이번 기증은 살벌하기 짝이 없는 언론계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나의 입장에서는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언론계에서 근무할 때는 동료들이나 커뮤니티에 있는 친지들이 가까이 다가오고 어떤 경우는 진실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사람들이 냉랭해지고 언제 친했더냐 식의 반응이 일반 현실이다. 심지어 친했던 직장 동료들 중에도 180도 태도가 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방송국과 신문사는 “네가 없어져야 내가 산다”는 식의 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의리가 담긴 우정이란 기대하기 힘들다.
친구에는 정우(情友)와 심우(心友)가 있다. 정우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정이 든 친구이고 심우는 사회에서 만나 사귄지는 얼마 안 되지만 오래 사귄 사람처럼 마음이 통하는 친구다. 자주 만나지 못해도 항상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이다.
친구는 대개 네 가지의 형태로 나타난다. 첫째 무엇이든 믿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거나, 둘째 내가 무엇을 하자 해도 나를 따라오는 스타일, 셋째는 쓴 소리도 마다않고 나에게 충고 주는 사람, 넷째는 언제라도 불러내면 군소리 없이 응하는 스타일이다. 심우도 아니고 정우도 아니고 이 4가지 형태에 속하지도 않는 사람은 친구가 아니다. 또한 자기 친구 중에 이런 사람이 하나도 없으면 친구가 하나도 없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우정의 기초는 상호간의 믿음이다. 믿음 위에서 자라는 것이 우정이고 믿을 수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친구가 아니다. 친구는 왜 필요한가. 산다는 것은 하나의 여행이며 시인 천상병의 표현처럼 이 세상 소풍이다. 시한부 인생이다. 그러나 하루살이의 시한부 삶과 인간의 시한부 인생은 다르다. 인간은 그냥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는다.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을 남에게 베푸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시간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반자가 필요하다. 이 동반자가 자신의 배우자와 친구인 것이다. 한국에서 요즘 인기가 한창인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이라는 책을 쓴 ‘알랭 드 보통’이라는 작가가 있는데 그는 “지혜가 제공하는 것 중의 가장 위대한 것은 우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정이야말로 인간 세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암컷과 수컷의 관계, 모자관계, 부자관계는 있지만 우정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에게는 친구가 있는가. 나는 과연 다른 사람에게 어떤 친구인가. TV 앵커의 신장 기증 뉴스는 우리에게 친구가 어떤 것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시간을 안겨주고 있다.
clee@koreatimes.com
<이 철> 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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