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점 대머리 남자는 시계들에 둘러싸여 있다. 우글거리는 톱니들, 떨고 있는 초침들, 흔히 시간은 거머리나 흡혈귀로 비유된다. 천천히 통증 없게 피를 빨고 혈관을 말려서 북어처럼 뻣뻣하게 만드는 것, 시간의 이빨은 아무도 느낄 수 없다. 톱니들, 초침들, 손목에 들러붙기 위해 태어나는 끈. 거머리손목시계, 흡혈귀탁상시계, 그런 시계 이름은 없다. 뻐꾸기시계, 좋은 이름이다. 눈이 와도 뻐꾹, 장례식에 가도 뻐꾹, 뻐꾹, 뻐꾹, 뻐꾸기시계의 뻐꾸기는 플라스틱뻐꾸기다. 기계음으로 흡혈의 시간을 운다. 누구나 혈관이 시들면서 늙는다. 하지만 시계점 대머리 남자는 어떤 때 아주 젊어져 있다. 젊어지려면 가발을 써야 한다. 졸업선물시계, 예물시계, 시계들도 늙는다. 피 마르는 흡혈귀처럼, 피 없는 흡혈거머리처럼.
최승호(1954~) ‘시계들’ 전문
공기가 없으면 3분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죽으면서도 공기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시간을 인식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잠을 자고 일어났으니, 오늘은 오늘의 해가 떴으니까 날짜가 바뀐 줄을 안다. 야금야금 우리를 먹어치우는 것이 시간인 줄 모르고, 나중엔 암사마귀처럼 통째로 나를 잡아먹는 것이 시간인 줄도 모르고.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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