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10주기 맞아 그녀의 일생·죽음·
‘존재의 의미’등 다양하게 부각
다이애나가 죽은지 10년이 흘렀는데도 이 왕세자비에 대한 영국인들의 관심은 수그러들 줄은 모르고 있다. 특히 그녀의 불행한 죽음에 대한 슬픔과 분노는 지난달 말 사망 10주기를 기해 한층 뜨겁게 달아올랐다. 런던의 타블로이드들은 아직도 죽음을 둘러싼 음모와 은폐, 왕실의 다툼 등을 지칠줄 모르고 짜내고 있다. “다이애나가 임신 중이었다는 서류발견!” - 데일리 익스프레스의 센세이셔널한 커버스토리의 최근 제목이다. 이 신문은 뉴스 같지도 않은 다이애나에 대한 온갖 시시콜콜한 이야기 등을 연일 대서특필, ‘다이애나 익스프레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다이애나의 세가지 모습 : 왼쪽부터 1970년 순수한 여학생때, 1989년 왕실대표로 홍콩방문때, 1997년 아프리카에서 지뢰제거 캠페인에 앞장섰을 때. 그녀가 순수했었나, 노련한 책략가였나, 인도주의자였나에 대한 이견대립은 지금도 계속 중이다.
“찰스가 다이애나의 추모식을 하이재킹하다!”라고 지난주 더 메일은 추모예배 참석인사 명단에 대한 왕실내의 갈등을 보도하며 이처럼 요란스런 제목을 달았다. 이 다툼의 결과 지난 주말 열린 추모식에는 가수 엘튼 존과 새 수상 고든 브라운은 참석했고 다이애나의 집사로 현재 왕실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폴 버럴은 게스트 명단에서 빠졌다.
로열패밀리들은 아직도 화해는 이루지 못한 듯 보인다. 크고 작은 불화들이 밖으로 삐져나오기 일쑤다. 대표적인 것이 찰스황태자의 현재 부인인 카밀라와 왕손들의 관계. 이번 장례식에도 참석예정이었던 카밀라가 지난주 갑자기 “행사의 본 목적에서 주의가 다른 데로 돌려지는 것”을 원치않는다며 불참을 밝혀 화제가 되었었다.
이 좋은 화제거리를 타블로이드들이 놓칠 리가 없다. 데일리 메일의 한 기자는 이렇게 확대해석 보도했다. “불시에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젊은 여성을 기리는 성당에서 무릎을 꿇은 채 TV 카메라에 잡히는 장면을 카밀라가 두려워 할 것은 당연하다…”
다이애나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팔린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영국의 신문과 잡지, 그리고 방송들은 지난 몇주 그들의 지면과 화면을 다이애나로 도배했다. ‘다이애나:그 존재의 의미’에서 ‘다이애나:프린세스를 기억하며’등 다양하게 조명된 스토리가 넘쳐난다.
사람들도 아직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이애나의 의미’에 대해 논쟁을 거듭하고 있다. 살았을 때나 죽은 후에나 열기는 비슷하다. 다이애나는 순수하였는가, 아니면 노련한 책략가였나? 그녀는 “수백만명의 삶에 영향을 끼친” 탁월한 여성이었나, 아니면 페미니스트 작가 저메인 그리어가 최근 묘사한대로 주위의 관심에 목매는 ‘머리속 텅 빈 악녀’였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는 그녀의 재능이 신중함을 미덕으로 삼는 영국의 정서마저 바꾸었는가?
어쨌든 10년이나 지난 일인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호들갑스러운 관심을 갖는 것일까.
다이애나의 비서였던 패트릭 제프슨은 그녀가 아직도 대중의 관심을 끌고 흥분시키는 능력을 갖고있다고 말한다. “다이애나의 팬은 팬대로, 싫어하는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각기 자신들이 원하는 다이애나의 어느 한 단면만을 보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러 면을 가진 인간이고 특히 생전에 진지한 일에 진지하게 몰두했던 진지한 사람이란 사실을 대중들은 인정하지 않으려한다…”
왕실추모식은 초청손님만 참석할 수 있는 비공개행사였지만 추모식이 거행되었던 8월31일 해로드백화점은 2분간의 추모 묵념시간을 갖고 전 고객들에게 동참을 부탁했다.
잘 알려진대로 해로드백화점의 소유주는 다이애나가 사망당시 동승했던 애인 도디 파예드의 아버지 모하메드 알-파예드다. 추모식에 초청받지 못한 그는 지금도 당시의 교통사고가 왕실과 영국정부의 음모에 의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이애나가 남긴 3가지 유산>
영국의 한 언론인은 희생자 문화와 추모병(病), 하나의 대중 정서를 유도하는 정서 교정을 다이애나가 남긴 3가지 유감스런 유산으로 정리했다.
다이애나비가 사망한 1997년 8월 관련 기사를 다뤘던 언론인 믹 흄은 8월31일자 더 타임스 인터넷판에 실린 글에서 다이애나 사망 이후의 반응이 이후 10년간 대중 생활의 풍조를 결정했다며 이같이 분석했다. 3가지 유산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희생자 문화(Victim culture)다. 흄에 따르면 다이애나는 사회적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이 됐다. “고통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내가 있고 싶은 곳”이라고 말하곤 했던 다이애나는 폭식증에서 간통까지 개인적 고뇌로 유명해졌다.
그녀는 고통이 미덕으로 여겨지는 시대에 완벽한 대중적 상징 인물이 되면서 단순한 동정심 보다는 존경심의 대상이 되었다.
둘째는 추모병(Mourning sickness)이다. 외로워지는 사회에선 대중의 대리 정서 표출 현상이 드러나는데 다이애나의 죽음은 대중이 가장 대규모로 추모병을 드러낸 사례가 됐다.
셋째는 정서 교정(Emotional correctness)이다. 다이애나의 죽음에 대한 반응은 전적으로 자연발생적인 것은 아니었다. 흄에 따르면 이 반응의 양태는 대중과의 정서적 연계를 만들어내려는 정치.언론계에 의해 만들어졌다.
정서 교정 현상은 도처에 있다. 다이애나를 ‘국민의 왕세자비’로 명명한 토니 블레어 전 총리의 연설에서부터 장례식 전에 “모든 영국인이여 묵념하라”라고 요구한 타블로이드판 신문의 머리기사 등이 그 사례들이다.
<뉴욕타임스-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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