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는 소백산 산골짜기에 있는 교회에서 새벽마다 새벽종 치는
아이로 자랐다. 우리는 흙벽돌 찍어 예배당을 지었고, 나는 산소통으로 만든 종을 땡그렁 땡그렁 치며 산골 마을을 새벽마다 깨웠다. 20대는 서울로 유학와서 UBF (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에서 제자훈련 받으며 캠퍼스 복음화에 투신했다. 30대는 남미 아르헨티나로 파송 받아 이민자들과 뒹굴며 중남미 33개국 3억을 품고 기도했다.
40대는 북가주로 청빙받아 이민교회를 섬겼다. 50대는 5년전 가정교회로 개척의 새인생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여기 까지 주님을 따라왔다. 나의 인생길은 비교적 평탄했지만 쉽지 만은 않았다. 지금도 하루 하루 긴장을 풀수없는 문제들을 안고 씨름하면서 살고있다. 왜 인생길에 끊임없이 크고작은 고난의 산들이 있어 야 하는가? 이제 내 나이도 오십대 중반이고 목자생활도 30년이 넘었으니 뭔가 쉽고 편하게 목회할 것 같은 기대가 있었는데 그게 아니다. 산너머 산이다.
과연 고난의 산이 주는 축복이 무었인가? 세계 역사를 보면 전쟁의 시기에는 그토록 건강하고 지혜롭던 왕들이 평화의 시기에는 비둔해 지고 어처구니 없이 무너지곤했다. 정말 그랬다.
만약 이땅에 고난과 시련의 바람이 없었다면 그렇지 않아도 교만한 인간들이 얼마나 더 교만 방자했겠는가. 고난은 인생들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있다.
전통적인 인과응보의 시각은 고난을 악인들이 받는 천벌로 여긴다. 그러나 욥기를 읽어보니 그게 아니다. 죄많은 세상에서 온갖유혹을 물리키며 순전을 지키든 욥이 망하고 망해서 잿더미 위애 앉기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고난의 풀무불을 통과한 욥은 이전의 욥이 아니다.
갑절이나 더 거룩해졌다. 갑절이나 더 풍성한 삶을 누리게 되었다. 갑절의 자유함 ,갑절의 평화, 갑절의 건강 ,갑절의 지혜자가 되었다. 그리고 갑절이나 하나님과 친해지고 갑절이나 더 이웃과 나누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더 쉽고 더 편안한 목회를 기대하지 않는다. 쉽고 안락한 둥지 속에서 비둔해 지거나 변질되고 망가지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오늘 나의 앞에 있는 고난 과 문제는 하나님 이 나에게 주신 건강이요,지혜요,겸손이요,축복이기 때문이다.
정말 이민의 삶은 산너머 산이다. 목회도 산너머 산이다. 그런데 그 산속에 하나님이 숨겨 놓으신 온갖 보물이있다. 산을 피하지 말자. 밥을 먹듯이 산을 잘 씹어서 소화 시키자.산 때문에 원망 불평에 빠지지 말고 산을 누리고 산을 사랑하는 풍성한 삶을 더욱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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