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박물관입구에서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순간,
미라가 된 시간들이 일제히 깨어나 걸어오고 있다
동굴 속 통로를 따라 붓 솔 같은 눈썹을 끔벅거리며
조심스럽게 벽화속의 먼지를 솔질하고 있다
전생의 기억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과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한 마리 사슴이 되어 포수에 쫓기다가
소가 되고 돼지가 되고 개가 되어
백정의 칼을 피해 산속으로 도망을 가기도 했다
저 사람은 한때 수십 년을 나와 동침한 여인이었고
저 사람과는 어느 백수 광부처럼 그런 이별을 하였으리라
벽화를 더듬다가 환생한 사람들이
박물관 광장으로 떼 지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약용이 만들었다는 거중기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환하게 웃으며
조금씩 침몰해 가는 삶을 다시 들어 올리고 있다.
정 겸(1957~)‘박물관 가는 이유’전문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순간 시간은 회귀하고, 문득 엉뚱한 상상을 한다. 벽화 속에서 쫓기는 짐승이 전전생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는, 함께 관람하던 여인, 아니면 영상 속의 여인이 윤회를 거듭하는 가운데 한번은 자신의 아내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라진 공간을 디지털 복원하여 돌아가 볼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가상은 가상, 돌아오면 가혹한 것이 현실이다. 침몰해 가는 삶을 또다시 떠받들 수밖에 없는 것이.
한혜영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