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1956~) ‘마음에 대한 보고서’ 중
나를 여태까지 키운 것은 불안이었다
아침으로 먹고 점심으로 먹고 저녁으로 먹는다
내 몸에는 항상 불안이 소화되는 중이다
어쩌다 불안을 굶으면 배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난다
…… 중략 ……
불안을 사러 다닌다
아침 점심 저녁 먹을 불안을 사러 다닌다
목욕탕에 간다 극장에 간다
시장에 간다 결혼식장에 간다
세미나장에 간다 전람회장에 간다
병원에 간다 학교에 간다
시 낭송회에 간다
싸게 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한아름 불안을 사 가지고 와
냉장고에 쟁여 넣는다
몸에는 항상 불안이 소화되는 중이다
식도를 지나 위를 지나 십이지장을 지나
작은창자 큰창자 항문으로 가는 길이 있다
차근차근 불안은 분해된다
불안이 나를 살찌게 한다
이 시를 읽어보면 목숨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안한 존재인가를 알 수 있다. 산다는 것 자체가 불안의 연속인 것이다. 우리가 즐거움이나 혹은 행복이라고 여길만한 것까지도 따지고 보면 불안과 다르지 않다는 것. 극장에도, 낭송회에도, 결혼식장에서도 반갑게 달려와 팔짱을 끼는 것이 불안이라는 생각을 하니 뱃속이 갑자기 좋질 않다. 좀 전에 불안에 밥 말아 먹은, 내 뱃속에도 어김없이 불안은 살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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