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옥관 ‘휘파람을 부는 나무’ 전문
케냐의 소들은 목덜미에
혹을 달고 있었다.
지독한 건기를 견디기 위해서라고 했다.
나무들은 혹 대신에
가시를 매달고 있었다. 내가 본
마사이마라의 나무들은 모두 아카시아였다.
어떤 아카시아는 휘파람을 불 줄 알았다.
사람들이 다 자는 오밤중에 홀로
휘파람을 부는 나무
마른 가시로 가시를 딱딱 부딪치며
휘파람을 부는 나무
새엄마가 들어오는 날 아홉 살 사촌 형은
우리 집 무화과나무 아래서 종일
휘파람을 불었다. 혹을 열매로
달고 있는 무화과나무가
넓은 손바닥으로 어루만져주었다.
작은아버지의 혹을
어루만져주었다. 혹독한 건기,
견뎌야 할 건기가 비로소 시작되고 있었다.
재혼 상대에게 아이가 있을 때 ‘혹이 하나 달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혹만큼이나 거추장스럽다는 뜻이다. 그러니 혹에 불과한 소년은 가시나무로 변종 할 수밖에 없다. 직감적으로 제게 닥쳐올 건기를 알아챘으므로. 문득 궁금해진다. 무화과나무의 넓은 손바닥이 어루만져주던, 휘파람 잘 불던 가시나무는 그때의 건기를 무사히 건너갔는지.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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