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유를 주재하시는 이의 높고 거룩한 뜻을 헤아릴 길이 없으나, 그를 부르심이 너무 갑작스러워 아직도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선생은 외세에 짓밟혀 허덕거리던 나라, 한국에 태어나 한 자연인으로서, 그야말로 소용돌이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아프게 사셨습니다. 20대 청년기에 닥친 한국 전쟁의 참화 속에서 벌써 남보다 몇 갑절의 고초를 감내하셨습니다.
그 후 선생은 남 먼저 넓은 세계의 문을 두드려 학문의 길로 나아가고, 이 땅 미국에 이주해 오시기에 이르러, 더욱 큰 뜻을 펼치셨습니다.
한편 문학인으로서의 선생은 다른 이들이 뒤따르기 어려운 전인 (全仁)에 가까운 생애를 훌륭히 사셨습니다.
선생은 운문과 산문 두 부문에서 통달하셨으며, 일찍이 영문 시 창작과 번역에도 일가를 이루심은 물론, 후진 지도- 문학지 간행- 신인 배출 등 창작 외의 중요한 문학 활동도 활발히 하셨습니다.
문학인으로서 이러한 전인적 생애는 전체 한국 문단사를 통틀어서도 아주 드문 예입니다. 더욱이 선생은 이처럼 큰 업적을 어느 한 때가 아니라, 삶의 마지막까지 쉼 없이, 또한 모자람이 없이 쌓으셨습니다.
저는 선생의 많은 개인적인 면모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재작년 4월 같은 연배이신 김남조 시인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했을 때의 일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한 행사장에서 선생은 김 시인을 향해 활짝 웃으시며 ‘우리 앞으로 20년만 더 살자’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가시다니요.... 너무나 안타깝고 슬프고 애석합니다.
석달 전인 지난 가을, 미주문인협회의 일로 댁에서 뵈었을 때, 몸이 불편하신 기색이 역력해 “김남조 시인과 하신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습니까? 어서 쾌차 하셔야죠” - 저의 이 말에 빙긋이 웃으시며 고개를 끄떡이시던 선생의 모습이 새삼 큰 아픔으로 가슴에 와 닿습니다.
지난 세월, 결코 짧지 않은 시간들을, 참으로 열심히 할 일을 다 하신 이. 한 인간으로서, 문학인으로서 큰 발자취를 남기시고, 모두가 본받아야 할 삶을 가득 사신 선생이시여, 이제 평화와 안식의 영원한 나라에서 편히 쉬소서.
2008년 1월 24일 후학 엎드려 빕니다.
고원 선생를 기림
<송상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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