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목련’전문
목련은 피고 아들은 죽었다
진홍가슴새의 가슴에 피가 흐른다
흰나비 한 마리가 눈물을 떨구고 간다
나는 고속도로 분리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든다
술취한 마음은 찢겨져 갈기갈기 도마뱀처럼 달아나고
고맙게도 새벽에는 봄비가 내린다
아들은 잡놈이었다
봄비를 맞으며 서둘러 서울로 도망간
무엇을 위하여 죽어야 할 줄도 모르고 죽은
아들은 잡놈이었다
꽁초를 찾아 불을 붙인다
고속도로 분리대 위에 다시 드러눕는다
사람들은 쓸쓸하지 않으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이제 내 가슴에 아들을 묻을 자리는 없으나
아버지는 항상 아들을 용서해야 한다
비는 그치고 고속도로는 안개에 싸인다
낡은 트럭이 푸성귀 몇 점을 떨어뜨리고 달아난다
목련이 필 때 죽은 아들은 목련이 필 때 돌아와 아버지의 허공을 흐려놓는다. 새가 울어도 나비가 날아도 아들이다. 비극 가운데 절정은 자식을 앞세우는 거. 자식의 죽음을 부모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건 세상에 없다. 생각할수록 아쉽고 원통하기만 한, 자식을 앞세운 부모는 표식 같은 구멍 한 개씩을 가슴에 지니고 산다. 딱따구리 한 마리 무시로 드나드는, 깊고도 어두운 구멍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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