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흥식(1956~) ‘아흐레 민박집’ 전문
이슬 내린 뜰팡서
촉촉이 젖어서 자던 신발들이 좋다
모래와 발바닥과 강물이 간지럽다
숙취 하나 없다
아침부터 마셔도 취하지 않는 이 바람
바람의 살
그 살결의 허릿매가 저리게 좋다
돌아갈 곳을 가로막는
파꽃 같은 이 집 돌아온 따님이
들어가 나오지 못하는 부끄러운 부엌
그 앞을 종일 햇살로 어정대서 좋다
병 주둥이 붕붕 울리며 철겹게 논다
그렇게 노는 게 좋다 한다
안 떠나는 게 좋아서 아흐레 민박집
둘러앉아 함께 밥을 먹던
바람의 속살이 잠을 설쳐서
마냥 이 집이 마음에 좋다.
아흐레나 민박집을 떠나지 못하는 핑계가 그럴싸하다. 뜰팡서 촉촉이 젖어서 자던 신발이 좋아서, 아침부터 마셔도 취하지 않는 바람이 좋아서. 그러나 민박집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이집의 딸 때문이다. 파꽃 같다는 말로 미루어 파경을 맞고 돌아온 듯한, 그녀가 들어있는 부엌 앞을 종일 어정대는 화자는 아무래도 쉽게 떠나진 못할 듯싶다. 아흐레가 열흘이 되고, 보름을 넘겨 한 달에 이르도록 떠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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