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 피플- 옛 농구스타 박재헌 씨
1990년대 중반 고려대서 활약하다
성공적 진로 변경‘잘만 USA’서 제2인생
“이제는 가족과 회사를 위한 덩크슛을 넣을 차례입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대학농구가 최고의 인기를 얻던 시절. 그 중심에는 최고의 꽃미남 오빠부대 연대 농구팀이 있었다. 그리고 실력과 인기에서 이를 견제한 유일한 팀은 고대였다. 두 팀에는 서장훈-박재헌·현주엽, 문경은-전희철, 우지원-양희승, 이상민-신기성이라는 걸출한 라이벌이 있었고, 수많은 명승부가 탄생했다. 이들은 졸업 후 국가대표와 프로농구의 간판선수로 지난 10년 이상 한국 농구를 이끌어왔다.
가든그로브에 위치한 잘만 USA(www.zalmanusa.com) 총무부 차장인 박재헌씨는 이들 중 가장 먼저 성공적으로 진로를 변경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박씨는 용산중학교에 다니던 1989년 미국에 이민 와 OC 인근 테쯜라프 중학교와 아테시아 고교, UC데이비스에서 농구선수로 뛰었던 1.5세다.
국가대표팀 백업센터로 프로구단에서 탄탄한 선수생활을 하던 그는 2006년 4월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소속팀 SK와 2년 계약이 남아 약 3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더 챙길 수 있었던 그가 거액을 포기한 이유는 가족 때문.
미국 영주권자였기 때문에 선수생활에 제약이 있었던 그는 신분유지 관계로 당시 미국에 입국하다가 이민 심사관으로부터 ‘한 번 더 상습적으로 한국에 나가면 영주권을 빼앗겠다’는 경고를 받은 뒤 깊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시즌 때면 부인은 물론 두 아들의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여서 미안한 마음이 많았는데, 이제는 가족을 위한 삶을 살자”고 결심했다.
1.5세답게 영어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장점이 있었지만, 한국 진출 이후 경기장과 훈련장만 오가며 농구만 생각했던 그였기에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첫 몇 달은 부동산 임대업, 창업, 취업 등 여러 가능성을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취직을 생각했다.
신문광고를 뒤져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고, 2006년 9월 입사시험과 면접을 거쳐 현재 근무하는 잘만 USA에 취직했다. 쿨러 등 컴퓨터 관련 제품을 자체 브랜드로 미 전역에 판매하는 회사의 전반적인 흐름을 배우고 싶어 유통·물류 쪽으로 지원을 했고, 그 후 줄곧 재고를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다.
센터 박재헌을 알아본 회사 선배들로부터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히스패닉 직원과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제품을 옮길 정도로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 이제는 회사 물류를 책임지고, 반품과 관련된 아이디어로 테스크포스를 구성해 운영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박씨는 “아직 남아있는 농구에 대한 열정을 이제는 가족과 회사를 위해 불태울 것”이라며 “중소기업이지만 품질 하나로 미국 내 고급 컴퓨터용 쿨러시장 1~2위를 다투고 있는 잘만 USA를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이의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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