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씨가 전소된 집앞에서 허탈해 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요바린다 화재
집잃은 오규씨
“추수감사절이 얼마 안 남았는데… 저희 가족들의 함께 모일 따뜻한 보금자리가 고스란히 날아가 버렸습니다”
17일 요바린다 지역 산자락의 고급 주택가 블루리지 드라이브. 길 끝 쪽에 당당하게 서 있던 한인의사 오규(48)씨의 2층짜리 주택은 앙상한 뼈대만 남은 채 형체도 없이 무너져 내려 있었다.
마치 전쟁터처럼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 현장에서 집이 전소된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망연자실한 표정이던 주인 오씨는 “집 건물이야 다시 지으면 된다지만, 추억이 구석구석 담긴 자리를 다시 찾을 수 없다는 게 슬프다”며 끝내 눈물지었다.
지난 15일 코로나에서 발생한 ‘트라이앵글 콤플렉스’ 대산불이 요바린다 집을 덮치고 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병원에서 당직을 하고 있던 이 날 아침이었다. 집에 있던 고교생 두 자녀가 강제 대피명령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부인 오명희씨에게 급히 연락을 취했지만 이날따라 전화통화가 잘 안됐다.
오씨는 만사 제쳐두고 황급히 집으로 향했지만 현관문 틈새로 들여다 본 집안에서는 자욱한 연기 속에 시뻘건 화마가 이글거리고 있었다. 뭔가 중요한 문서 등을 챙겨보려 했지만 그냥 맨몸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을 만큼 집은 이미 불덩어리였다. 자녀들이 무사히 빠져나온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오씨의 집 뒤쪽 산등성이에 휘몰아친 불길은 처음에는 오씨의 집을 피해 건너편 산등성이로 넘어갔지만 이내 방향을 바꾼 강풍이 재앙을 불러왔다. 건너편에서 100여피트를 날아온 불덩이가 양쪽 집은 멀쩡히 남겨둔 채 오씨의 집만 덮치면서 2층 구조가 전소되는 피해를 당했다.
화마에 요바린다 집을 잃은 한인 오규(왼쪽)씨가 폐허로 변한 현장에서 친구의 위로를 받고 있다.
<이은호 기자>
“눈앞에서 집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보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졌다”고 말하는 오씨는 “그래도 온 가족이 무사한 것이 감사할 따름”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1973년 이민 와 시카고에서 자란 오씨는 의사가 된 후 워싱턴주에서 살다가 지난 2000년 남가주로 이주하면서 계속 이 집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현재 UC버클리에 다니는 큰 딸을 포함, 1남2녀가 모두 성장을 한 곳이다. 가족애가 유난히 끈끈한 오씨 가족에게 이번 화재는 그만큼 날벼락과 같았다.
오씨 가족은 현재 인근 플라센티아에 사는 오랜 친구 김재훈(48)씨의 집에 머물고 있다. 오씨는 몸만 빠져나온 가족들을 위해 있을 곳은 물론 모든 것을 챙겨주는 친구가 고마울 따름이다.
오씨는 보험회사와의 협의를 거쳐 무너진 자리에 집을 새로 지을 생각이다. “우리 아이들이 자란 곳입니다. 옛 집은 비록 없지만 이곳에서 행복한 기억들을 다시 쌓아가야죠”.
<이종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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